'내 인생은 희망을 묻는 묘지다.'
자신의 빨강머리가 너무 싫었던 빨강머리 앤은
자신의 빨강머리가 혹시나 크면서
다른 색이 될 수 있는지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여쭤봤다.
마릴라 아줌마는 소위 요새 말하는
MBTI에서 T이신가 보다.
앤의 간절한 눈빛 앞에서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런 경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팩폭을 날리신다.
그 매몰찬 대답에 절망할 수도 있건만,
앤은 자신의 희망 하나가 또 사라졌다면서
'내 인생은 희망을 묻는 묘지'라고 말한다.
어차피, 빨강머리 앤에게는 희망리스트 중 하나가 없어진다해도
다른 희망들로 가득 채울 것이다.
앤은 희망을 묻는 묘지기도 하지만,
희망을 만들어내는 자동 생성기 같은 아이이다.
간절히 원하던 것이 절대 이뤄 질 일 없다는 것을 알아도
저렇게 쿨하게 인정하고
오히려 낭만적인 이 문장 속으로 장례의식을 치를 수 있는 앤이 부럽다.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떠오른다.
이 비가 지나가면 땅이 굳는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새로운 새싹이 난다.
이쪽 문이 닫히면 저쪽 문이 열린다.
불황 이후에 호황이 온다.
내려가면 올라간다.
이별이 지나면 설레는 만남이 온다.
칠흑 같은 밤이 지나면 새하얀 새벽이 온다.
나와 내 동시대 사람들 뿐 아니라,
저 먼 옛날 선조들도 이 진리들을 알고 있었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저 앞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소망을 품고 가는 자들은
반드시 광명을 보게 된다는 것을.
'딸아,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온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난 착하게 산 것 같은데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이 지배하고 있을 때,
이미 나보다 먼저 인생의 불호황을 다 겪어 보신 아버지께서 이런 나의 마음을 읽으셨나 보다.
지나가시다 날보고 이말을
툭 던지듯 뱉고 가셨다.
누구나 아는 이 진리의 말이 나를 살렸다.
사실 말 자체는 별것 아니다.
그러나, 어둠을 쫓아낼 빛이 되려니,
그 말이 내 가슴을 토양 삼아 박히고 씨앗이 되어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인생의 불황시기에 이 말이 뭐가 대단하다고
생명줄처럼 꼭 쥐고 버텼다.
그랬더니 정말 봄이 왔더랬다.
희망은 피어난다더니
칠흑 같은 절망과 슬픔의 땅 속에 숨어 있다가
피어나는 게 분명하다.
짧은 인생이지만 뒤돌아보니,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왔을
이 무심한 진리가
나의 삶 중간중간에 소망의 씨앗으로 자리 잡고
나를 살리고 있었다.
감. 사. 하. 다.
인생 걸고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시험을 망친 후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전재산을 탕진하고 살 길이 막막했을 때,
성과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싶었을 때,
체력이 힘들고 피곤해서
하던 일을 그만하고 싶었을 때,
무례한 사람들을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싶었을 때,
진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아무리 착하게 열심히 살아도
사는 것은 여전히 힘겨울 때,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죽음의 문턱을 넘나 들고 있었을 때,
불황이라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 괜히 날 불안하게 할 때에도
이 특별한 거 없어 보이는 이 말들이
앞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기다리게 만든다.
그게 희망이겠지.
천 년 전 살았던 사람들,
높은 사람들,
낮은 사람들,
부자들,
가난한 자들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살랑거리는 풀줄기를 보며,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온몸으로 느껴지는 계절이 오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도 버티는 것이 정답이고
이왕이면 소망을 가슴에 품고
마치 불황이 아니라 호황인 것처럼
날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가야지.
터널은 아무리 길어도 터널이다.
계속 가다 보면,
결국 빛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인생은 희망을 묻는 묘지니까.
봄이에요!! 생명과 희망을 가지고 찾아온 봄에게 인사를 꼭 해주세요.
안녕~ 봄아~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