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내 부모형제, 내 처자식
가난의 그늘을 걷어낼까
희망의 마음을 안고
바다 건너 이 몸뚱이 옮겨왔습니다
이곳은 바람조차 독일어만 하여
소리도 냄새도 온통 독일입니다
지하 수백 미터 아래 햇빛 한 줄기조차
허락하지 않는 시꺼먼 독일갱도입니다
손, 등, 땀, 침묵으로 더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지하의 심장을 향해 한 걸음씩 더 내려갈 때마다
내 땀방울과 희망은 태양빛보다 더 빛납니다
갱도 끝에서 딱딱하게 굳은 땀에 절은 빵 한 입 베어 물며
채워지지 않는 배를 채워도
내 고국에서 맑은 하늘아래 깔깔거리고 놀고 있을
내 아들 내 딸을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참을 만합니다
이곳은 모래바람이 내 얼굴을 때리고,
매서운 태양빛의 열기가 내 등에 내리꽂는 노란 사막입니다
오일머니가 이 노란 모래가루를 금가루로 쌓아 올렸습니다
하지만 쌓아지는 건 하늘 향해가는 높은 건물만이 아닙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우리 가족의 꿈도 쌓입니다
내 조국의 미래도 쌓입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쓰러질 듯 고되지만
되다할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헬멧아래 사진 속
방긋 웃고 있는 내 처자식들이 둥근 식탁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웃음꽃 피우며 배부르게 먹을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참을 만합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땅아래에서 사투 후 맞이하는 밤이나
등을 짓누르는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버티고 맞이하는 밤은 닮았습니다
작은 침상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뉘이며
고국에도 펼쳐졌을 깨끗한 밤하늘 초롱초롱한 별들을 올려다봅니다
손 흔들며 눈물을 훔치던 늙은 울 어머니의 쭈글쭈글한 손등
아빠 빨리 와서 목마 태워 달라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건강하게 돌아와야 한다고 단단한 다짐을 시키던 마누라의 곱디고운 얼굴은
희미한 안개 같아서 그리움의 흰 파도가 바다건너 날 삼킬 듯 밀려옵니다
그 그리움의 파도 뒤로 붉은 불꽃처럼 끓어오르는
붉은 태양빛을 담은 울 엄니표 묵은지김치찌개도
그리움을 참지 못해 보글보글 뒤따라 달려옵니다
묵은지가 붉은 바다 같은 국물 속에서 보글보글 생명 숨을 연신 뱉으면
덩달아 두부와 돼지고기는 같이 춤을 춥니다
나도 덩달아 함께 춤을 춥니다
언제나 그 한 그릇이면 고단한 하루도
보글거리는 김치찌개 속에 잠길 수 있었는데
지금도 그 한 그릇이면 내 그리움도 내 서러움도 내 힘든 노동도
보글거리는 김지찌개 속에 잠길 수 있는데
내 맘도 모르고 반짝반짝 웃고 있는 별아래에서
별대신 김치찌개를 상상하며 눈을 감습니다
미소가 절로 납니다
그 맛이 느껴집니다
내 입에서 고이던 침이 참지 못하고 흐릅니다
참지 못한 내 눈물도 흐릅니다
날 기억하는 붉은 국물아
날 춤추게 한 두부와 돼지고기야
내 살아온 기억아
내가 다시 돌아갈 그리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