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입사 지원하는데 자필 이력서를 제출하래요.
이거 글씨체를 보려는 걸까요?”
그 밑에 달린 답변들은 이랬다.
‘요즘 세상에... 거기는 걸러요’
‘손꾸락 부러질지 몰라요. 조심하세요’
‘꼰대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웃긴데... 씁쓸하다. 자필 이력서가 꼰대의 요구라니... 스스로 꼰대의 기질을 인정하며 자필 이력서의 이면의 의미들을 한번 생각해본다.
이력서를 자필로 써오라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기는 하다. 그런 경우 입사 지원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주 번거로운 일이다. 글씨도 초등학교 때 이후로 가장 또박또박 써내야 하며, 혹여 글씨를 틀리기라도 하면 새로운 종이를 출력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과정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쓴다고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편하게 온라인 지원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 때 나도 그런 마음이었지만 취업처를 발굴하기 위해 만난 한의원 원장님이 이런 나의 마음을 180도 변화시켰다.
직원을 채용하실 때 제일 중요하게 보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정성과 태도입니다. 아무래도 한의원은 아픈 고객들을 응대해야 하니 마음을 다해 고객을 대하는 것이 치료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그래서 아직도 자필 이력서를 받습니다.
자필 이력서를 들고 오라 하면 참 가지각색의 이력서를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글씨를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사진에 풀칠한 모양, 붙어있는 상태만 봐도 지원자가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 느껴집니다. 한 칸 한 칸 공들여 쓰인 이력서에 그 사람의 일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어요.
데스크에 있는 저 직원은 글씨를 참 못썼는데 글씨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었어요. 정성을 다해 써왔던 거지요. 고객들이 저 직원 칭찬을 많이 합니다."
<천호동 00한의원 원장님>
언택트 시대라며 디지털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빠르고 계산적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 같은 요즘도 아날로그가 필요할 때가 많다. 한의원 원장님의 자필 이력서가 그렇다. 정성과 태도를 느낄 수 있는 요소는 어쩌면 느리고 비효율적인 아날로그 자필 이력서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이 들고 육체를 고단하게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들을 일부러 찾기도 한다. 초등학생은 다이어리를 꾸미고, 성인들은 캘리그래피를 써내며 마음을 정화시킨다.
나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서점에 간다. 알록달록한 책들의 세상 속에서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문장 속으로 빠져든다. 사각거리며 넘어가는 종이책은 오감을 자극하며 행복감에 빠져들게 한다. 시대가 변해도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욕구, 특히 심미적이고 정서적인 부분들은 아날로그 세상에서 더욱 완벽히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일지라도
마음이 담긴 아날로그 자필 이력서
정성껏 한번 써보시면 어떨까요?
4차 산업시대에 아날로그가 필요한 이유는 인공지능 로봇이 해내지 못하는 영역에 답이 있다. 아날로그 자필 이력서를 받는 곳은 대부분 사람을 대하는 업무가 많다. 학교 선생님의 경우 학생을 대하는 정성과 태도를 보기 위해 자필 이력서를 받는 곳을 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지식의 전달은 인공지능이 해낼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랑을 전하고 관심을 가지는 영역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적인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인 사랑 그리고 관계를 위해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