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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메다 Dec 23. 2024

왜 개학 첫날은 장염에 걸릴까요?

낯섦이 싫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개학 첫날이면 항상 장염에 걸리거나 심한 몸살이 걸려서 병원에 가거나 결석을 하곤 했다. 이유는 나만 알고 있었다. 대개 개학이거나 많은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앞두고 아플 때가 많았다. 그냥 이런저런 부담과 긴장감에 학교에 가기 싫었던 거였다. 첫날의 낯섦이 싫어서 꼭 두 번째가 좋았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서툴러서'인데, 인생에서 첫 경험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신나거나 즐겁기보단 긴장과 두려움이 앞섰던 거 같다. '잘할 수 있을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등등 꼬리의 꼬리를 물고 물고 또 무는 불안감 때문에 배가 아프거나 잠을 못 자 몸살이 나서 개학 첫날의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지멀쩡한 딸이 개학 때면 아프니 엄살 부리지 말아라 하면서도 학교에 전화를 걸어 쉴 수 있게 해 주셨다. 



첫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책상을 찾아 앉고,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눈치 보며 반 분위기를 파악한 다음 친한 친구가 없으면 누구와 친해질 수 있을지 스캔하고 말을 거는 여러 과정들을 생각하면 손에 땀이 흥건했다.(지금은 그때 감정을 생각하니 손발이 차가워지고 있다.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남아있나 보다.) 중요한 건 결국엔 적응을 잘한다는 것이다. 학기가 끝날 때면 잘 마무리하는 걸 알고 있음에도 첫날은 왜 맨날 두려운 것일까?



예측불허한 상황은 너무나 많은데 특히 개학 첫날에 아팠던 건 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내면의 두려움이 있었다. '이유 없이 싫어할까 봐', '친해질 친구가 없을까 봐', '날 싫어하는 친구들 앞에서 주목받는 일이 생길까 봐' 등 여러 가지지만 함축해서 말하자면 '왕따가 되기 싫어서'가 맞다. 



학창 시절은 친구가 전부고 일주일에 5번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욱 많기 때문에 왕따가 되면 세상을 잃은 기분이라는 걸 알아서 더욱 전전긍긍하고 인기 있고 싶어서 애썼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사소한 일들로 나를 갉아먹었을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사회에선 각자도생이라곤 하지만, 중학교 때 나의 이름을 먼저 물어봐 주었던 친구 덕분에 나의 개학은 점점 설레는 날로 변화해 갔다. 히터도 말도 분위기도 너무나 따스했었다. 



그땐 왜 그렇게 처음이 아팠을까. 지금은 처음이 너무나도 설레는 어른이 되었다. 중학교 때 받았던 따스함 때문일까? 새롭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많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게 많으며, 배울 수 있는 게 넘쳐흐른다는 게 감격스러울 정도로 감사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두려움을 주었던 예측불허한 삶은 시트콤 같은 삶의 재미를 주고, 처음 경험하는 일들은 첫사랑의 두근두근 했던 설렘처럼 신선한 감정을 선사해 준다. 



개학의 첫날을 두려워했지만, 출근 첫날을 기대하고

친해지기 어려워 눈치 봤지만,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고

따돌림당하기 싫었었지만, 가끔은 혼자 있는 게 좋아졌고

아직도 서툴지만,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두려움이 많지는 않지만, 이런 두려움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누군가 눈치 보고 두려워하고 용기를 못 내고 있다면 따뜻한 손길 한번 내어주면 개학 첫날이 설레는 감정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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