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규 Jul 14. 2023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1

서언 1

이 책은 규칙이 아니라 원칙에 관한 것이다


규칙은 <반드시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 원칙은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으며…… 기억이 미치는 한 항상 그래왔다`고 말한다. 이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당신의 작품은 잘 만들어진 작품을 본뜬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예술을 구현해 내는 원칙들 속에서 잘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경험이 많지 않고 초조해하는 작가들은 규칙에 복종한다. 반항적이고 학교라는 틀을 거치지 않은 작가들은 규칙을 쳐부순다. 예술가들은 형식을 장악한다.


이 책은 공식이 아니라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형식에 관한 것이다.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모범 사례와 절대 안전한 이야기의 모델들이 있다는 통념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트렌드물, 리메이크, 속편을 막론하고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들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발견하는 것은 어떤 정해진 교본이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여섯 대륙의 모든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수세기에 걸쳐 다시 만들어질 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추구한다. 할리우드에서 먹다 남긴 찌꺼기를 데워먹는 요리법을 적은 책 따위를 누가 필요로 하겠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예술에 숨겨진 교의와 잠재된 재능을 해방시켜 주고 이끌어줄 수 있는 원칙의 재발견이다.


어떤 원형적인 특성을 품고 있는 영화는 할리우드, 파리, 홍콩, 그 어디에서 만들어지든 관계없이 영화로부터 또 다른 영화로, 한 세대로부터 다른 세대로 이어지는 즐거움의 총체적이고 영속적인 연쇄 반응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9-10 쪽)

영화가 하나의 건축물이라면 시나리오는 설계도에 해당한다. 설계도는 건축공학에 바탕을 둔 상상력의 산물이다. 시나리오 역시 영화미학에 바탕을 둔 창조력의 결과이다. 공학이나 미학의 공통점은 기술이나 예술의 제작에 원리 혹은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극을 보고 울으며, 희극을 보며 웃는다. 햄릿을 보고 웃는다면 그건 관객 자신의 정서의 문제이거나 배우의 연기력 혹은 연출자 혹은 감독의 역량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전에는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이 있지만 그 배후에 공감을 일으키는 어떤 보편적 원리도 존재한다.


물론 누구나 이 원리를 안다고 훌륭한 작가나 감독이 될 수는 없다. 명문대를 나왔다고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왜 이런 책을 읽는가? 그냥 많이 보고 많이 경헌하고 많이 쓰다 보면 명작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혹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은 아닌가? 과연 노력한다고 창의성이 개발되는 것인가?


맥기의 이 책은 이런저런 물음에 답을 주려는 시도가 아니라 스토리를 제작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에 의한 일종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책이다. 그래서 그는 서언에서 규칙과 원칙, 공식과 형식을 구분한다. 사실 이것만 깨달으면 이 책은 더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창작의 기법을 찾는 누구에겐 가는 이 책은 멋진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전형이 아니라 원형에 관한 것이다.


원형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구체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들어 올린 후 그 내부를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담고 있는 표현으로 감싼다. 전형적인 이야기는 이것에 반대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내용과 형식 모두의 빈곤에 허덕인다. 전형적인 이야기는 그 내용을 협소하고 특수한 문화적 경험으로 제한한 후 낡고 몰개성적인 일반성으로 포장한다.


예를 들어보자. 스페인에는 한 집안의 딸들이 결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나이 순서대로 내리닫이로 해야 한다는 풍습이 있었다. 엄격한 가부장제의 가족 질서, 아무런 힘이 없는 엄마, 결혼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큰딸, 그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받는 작은 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스페인이라는 나라 안에서라면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적일 수 있겠지만 스페인 밖의 지역에 사는 관객들에게는 쉽사리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만약 작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이 이야기에서 어떤 원형을 발견해내기만 한다면 이 억압적인 관습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원형적인 이야기는 그 상황과 인물들을 아주 희귀하게 설정해서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사항들로부터 도저히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드는 한편,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든 너무나 진실하게 와닿는 갈등을 풀어내기 때문에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 가능해진다. (10-11 쪽)

저자는 이야기의 전형과 원형을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수용 여부는 독자의 몫이다. 위에 제시한 도표는 12가지의 원형(archetypes) 캐릭터가 지향하는 목표에 관한 정의이다. 이야기의 얼개를 짜려면 장르의 선정 못지않게 캐릭터의 설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캐릭터들은 일종의 원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융의 심리학적 분석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집단적 무의식 속에 일종의 원형적 이미지를 가자고 있다. 예를 들어 고전적 이야기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영웅이나 구원자의 이미지는 아마도 일단의 무리를 형성하기 시작한 인류의 조상들에게서 형성되어 모든 인류의 보편적이고 집단적 무의식 속에 내재한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모든 민족의 기원신화나 건국신화에서부터 현대 할리우드의 마블시리즈나 DC코믹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이 이미지는 이야기의 중심적인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지금 여기서 실감 나게 우리의 외적 현실과 혹은 내적 판타지와 맞다와 있는지의 여부이다.  

작가의 이전글 육화: 살의 철학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