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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Aug 14. 2023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2

서언 2

이 책은 지름길이 아니라 철저함에 관한 것이다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탈고에 이를 때까지 시나리오 한 편을 끝내 는 데에는 소설 한 편을 쓰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지 종이에 써진 시나리오에 여백이 훨씬 많다는 이유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소설을 쓰는 것보다 쉽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게 된다.


소설가들이 손이 따라가 주는 한 최대한의 속도로 지면을 메워가고 있을 때 시나리오 작가들은 가장 적은 수의 낱말을 가지고 최대한의 것을 표현해 내기 위해 머릿속에서 무자비하게 편집에 편집을 거듭한다.


파스칼은 언젠가 친구에게 한정 없이 긴 편지를 한 통 쓰고 난 후 추신에 짧은 편지를 쓸 만한 시간이 없었노라고 사과하는 글을 덧붙인 적이 있다. 파스칼이 그랬던 것처럼 시나리오 작가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성이며 간결함이야말로 시간을 요하는 것이고 뛰어남이란 곧 참을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배운다.(12-13 쪽)

국어선생님이나 논술선생님 혹은 유명 작가들에게 글쓰기의 왕도를 물으면 답은 거의 동일하다. 다사(多思), 다독(多讀), 다작(多作). 즉 글의 구상을 위한 많은 사색과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또 규칙적으로 운동하듯이 글을 쓰라는 충고일 것이다.


실제로 우수한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대부분은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훌륭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상을 수상한 극작가 겸 배우/감독인 우디 앨런은 자신의 성공의 비결로서 마치 조깅처럼 일상화된 매일매일 글쓰기를 들고 있다.


성공한 사람에게 좋은 습관이 있듯이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도 재능 이상의 좋은 습관이 있다. 그 습관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며 무조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짧고 우리의 상상력도 시대나 문화의 한계 내에 있다.


그래서 저자는 경제성과 간결함 그리고 탁월성과 인내심을 좋은 글쓰기의 일차적 조건으로 집약한다. 즉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효율적인 자원 관리야말로 제품 생산의 우선 조건이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는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이 책은 창작의 신비성이 아니라 현실성에 관한 것이다.


예술의 진실에 관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떤 식의 책략이 있어본 적은 없다. 이미 23세기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쓴 이후로 이야기의 <비밀>은 거리에 들어서 있는 도서관만큼이나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드러나 있었다. 이야기 구성의 기법들 중에 난해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첫눈에 보기에 영화를 위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거저라고 할 정도로 쉬워 보인다. 그러나 중심을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도록 장면 하나하나를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점점 산 넘어 산이 되어가는데, 알다시피 스크린에는 숨을 곳이란 한 군데도 없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는 설명적이거나 감성적인 언어를 사용해 논리상의 결점, 불투명한 동기, 아무런 색감도 없는 감정을 부드럽게 덮어버리고는 독자들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라고 간단하게 주문할 수도 없다. 카메라는 모든 잘못된 것들에게는 치명적인 X레이 기계이다. 카메라는 인생을 몇 배로 확대해서 보여주며 우리가 혼란과 당혹감속에서 다 때려치우고 싶어질 때까지 이야기의 전개 과정 중 모든 취약하고 유치한 구석을 샅샅이 발가벗겨 낸다. 시나리오 창작 과정은 이상한 일들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는 아니다.(13-14 쪽)

음성이나 문자는 신비한 힘, 마법적 힘을 가지고 있다. 연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청중은 그의 발성에서 흐르는 감성과 경험을 공감하는 한편 동시에 뇌의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한다. 문자는 연관된 이미지와 관련된 이해의 지평을 풍부하게 확장한다.


시나 소설을 읽을 때 우리의 뇌는 유사한 경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미지를 불러 합성하거나 생산적 구상력을 이용하여 기호와 줄거리를 이해할 사고의 여백을 확장한다. ‘어두운 밤 해변가에서 군청색 바다 위에 떠오른 푸른 달’이라는 구절을 읽고 내면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상당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의 영상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상상의 여백을 없애고 사실적 이미지로 뇌를 도배한다. 그 아래의 영화 사진을 보자. 나치에 압송된 유대인 무리 중 빨간 옷을 입은 소녀의 가련함을 이처럼 사실적인 영화 장면 이상으로 표현할 수 았을까?


할리우드는 꿈의 공장이라 하지만 그곳에서 생산된 꿈은 소설적 픽션보다 더 픽션적인 방법으로 제작되지만 그렇게 생산된 영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그러므로 시나리오는 문자의 마법적 신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영상화된 현실적 사실의 묘사에 충실할수록 그 감동은 배가 된다. 물론 모든 영화가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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