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규 Aug 21. 2023

시작과 끝에 관한 사색 4

무와 무한 사이 3

파스칼은 우주는 크고 작은 무한대로 확장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내용은 인간의 관점에서 본 우주적 규모였습니다.


첫째로, 무한히 큰 것에 대해서는 “무한함 안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말했고, 무한히 작은 것에 대해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주에서는 감지할 수도 없었던 우리 육체가 … 이제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무릎에 비하면 거대한 존재, 세계, 아니 어쩌면 전체가 된 이 상황에서 그 누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은 "무한과 무, 이 두 심연 사이에서 자연이 그에게 부여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물의 크기에 대한 현대 지식을 이용하여, 우주의 위계 속에서 인간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원자 크기 (20세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크기)에 도달하려면 인체를 몇 번이나 반으로 줄여야 할까요? 정답은 30번입니다.


반대편으로 가서, 인간이 별의 크기 (파스칼이 알고 있는 가장 큰 물체인) 태양과 같은 전형적인 별에 도달하려면 인체를 두 배씩 몇 번이나 키워야 하는지도 물을 수 있습니다. 정답은 33번입니다. 따라서 두 배씩 줄이거나 키울 경우, 인간의 크기는 원자와 별 사이의 거의 절반 크기에 해당합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어쩌면 이 구절이 담고 있는 심리적이고 신학적이기까지 한 내용입니다. 그는 “이러한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진 무도, 삼켜지는 무한도 모두 볼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26-27 쪽)

파스칼은 무도, 무한도 인식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흔히 우리가 팡세라고 하면 ‘생각하는 갈대’로서 인간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인간은 무와 무한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생각을 믿음으로 변형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파스칼이 인식한 한계를 더 확장시켜 왔다. 파스탈이 생각한 최소 단위는 더 정밀하게 세분되어 그 모습을 드러냈고 최대 단위 역시 우주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태초의 입자를 발견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 과학이 새롭게 발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무와 무한 사이의 한계를 다른 차원의 한계로 드

러내고자 한다. 그 한계는 아인슈타인이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신비의 차원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단지 그것들은 보일 수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은 신비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의심할 여지없이 이 문장들에서 파스칼은 신의 신성한 경지에서 인간의 하찮음과 한계를 언급하고 있었지요. 여기서 '무'는 아마도 인간과 우주 전체의 창조라는 신성한 창조를 의미할 것입니다. 무와 무한을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무능함은, 파스칼이 죽은 지 불과 5년 만에 출판된 존 밀턴의 ‘실낙원’ 속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천사 라파엘은 아담에게 몇 가지 모호한 암시를 준 후, "그 외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위대한 건축가께서 그의 비밀이 드러나고 누설되지 않도록 인간과 천사, 즉 마땅히 그를 우러러봐야 하는 모든 이로부터 그 비밀을 지혜로이 숨기고 계신다"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지식에 어떤 경계선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저는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 즉 우리의 양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무한을 두려워할 것이라는 파스칼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세계를 탐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생각을 '두려워 ‘해야만 할까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한탄해야만 할까요? 아인슈타인은 "신비로움이야말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다. 진정한 예술과 진실한 과학의 요람 안에는 바로 그 근본적인 감정이 들어 있다”라고 말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신비로움'이란 뭔가 두렵거나 초연적인 현상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미지의 세계와 또 다른 미지의 세계 사이의 경계선에 대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경계선 위에 서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지요. 게다가 우리의 정신이 이해하는 현상과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오롯이 인간만이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밝혀진 일과 밝혀내지 못한 일 사이의 경계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얻어서라지는 이해의 반경에 따라 움직입니다. 500년 전에는 전기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생명체가 자손을 잉태하는 구조적 원리를 알지 못했지요.


알게 된 일과 아직 알아내지 못한 일의 경계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쪽 편에는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그 신비로움은 우리를 계속해서 끌어당기고, 자극하며, 괴롭히지요. 그리고 그것은 전에 없었던 과학과 예술을 탄생시킵니다. (27-30 쪽)

인식의 한계 너머에 존재하는 신비는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체험 속으로 들어와서 그 한계를 초월하게 한다. 소위 임재와 초월은 신비 현상의 일반 원리이다. 하지만 이 원리는 보편적 법칙은 아니다.


신비는 때로는 과학자의 실험과 관측 속에서, 때로는 예술가의 영감과 상상 속에서 또는 명상가의 내적 직관과 계시를 통해 새로운 세계상과 그 세계 내에서 인간의 새로운 위치를 노정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많은 신비스러운 현상(개기 일식이나 지진….)이 인간의 인식 안으로 들어오면서 신비를 잃어버리듯 지금 우리가 신비라고 부르는 것들도 상식이 될 것이다. 그 너머에 또 다른 신비가…


이전 03화 시작과 끝에 관한 사색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