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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Aug 09. 2023

시작과 끝에 관한 사색 3

무와 무한 사이 2

파스칼은 사실상 휴머니스트이자 과학자인 독특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이 없는 인간의 비참함 The Misery of Man Without God」과 같은 글에서처럼 (파스칼은 신앙심이 깊었음) 인간 본성을 면밀히 들여다보던 관찰자였으며,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태어난 세속적인 사람이었고, 파리의 살롱을 드나드는 손님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영기하학 (射影幾何學, projective geometry)‘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수학자이자 최초의 기계 컴퓨터를 설계한 발명가였고, 확률 이론의 선구자였습니다. 압력의 단위인 파스칼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파스칼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도 있습니다. 파스칼을 르네상스의 또 다른 위대한 박식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블레즈 파스칼에 대해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무한, 즉 ‘무한히 작은 세계와 무한히 큰 세계에 대한 그의 상상력'과 '인간으로서 절대 이를 수 없는 세계를 맞닥뜨린 인류에 대한 고찰'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기독교의 사상가들이 신의 무한한 힘에 관해 논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엄청나게 크거나 작은 물체에 닿았던 흔적은 없었습니다. 파스칼은 분명히, 마음속으로 좁은 거리를 따라 걸으며 상상의 세계 이곳저곳을 마음껏 누비고 다녔지요.


그리고 오늘날 과학자들도 같은 일을 해냈습니다. 파스칼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물리학과 천문학에 대한 새로운 발견들을 통해 우리는 큰 세계와 작은 세계에 관한 놀랍고도 새로운 한계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측정 도구를 개발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상적인 한계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특성으로 인한 근본적인 한계였습니다.(15-20 쪽)

위의 그림은 마인데르트 호베마(Meindert Hobbema)의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이다. 가로수의 나무가 만든 선은 무한대의 소실점에 모인다. 유클리드적 기하학의 공간에 무한대의 개념이 추가된 공간을 사영공간이라 하고 이 공간에서의 기하학적 계산을 가능케 하는 것이 사영기하학이다.


유한한 공간 속에서 무한의 지평이 열려있는 이런 풍경화는 우리의 감각과 다른 공간적 중첩을 보여준다. 각 시점에서 사물은 달리 보이는 것처럼 무한 공간의 속에서 배치된 사물을 측정하려면 무한이나 소실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지향하는 수학적 원리가 필요해진다. 이제 상상 속의 무한 개념은 수학의 세계로 도입된다.


이는 마치 인간의 다양한 삶이 종국적으로 무(죽음)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나를 제외한 모든 타자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기에 타성적으로 애도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막상 내게 그것이 닥치면 이 죽음은 개별적이자 동시에 보편적 죽음이 된다. 죽음은 무이고 우리 모두 무를 향해 가는 동시에 삶의 바닥이 무라는 심연이 늘 함께 하기에 우리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먼저, 큰 세계에 대한 한계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존재가 있다면, 그는 우주 공간을 대부분 비어 있지만 빛나는 빛의 섬인 은하들에 의해 구멍이 뚫린 광활하고도 어두운 바다라고 볼 것입니다. 우리 은하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은하는 평균적으로 약 천억 개의 별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별의 약 천억 배 크기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실제로 수십만 개의 은하 지름까지의 거리를 측정했는데 이는 현실에서 가장 먼 거리로 알려진 영역입니다.


우주는 그 엄청난 거리 이상으로 확장될 수 있지만, 우리는 어떤 특별한 이유로 그 이상은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파스칼의 무한히 큰 세계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주의 유한한 나이와 빛의 유한한 속도로 인해 한계에 봉착하게 됩니다.


자, 이번에는 작은 세계의 한계입니다. 일반적으로 원자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각각의 원자 속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핵이라고 불리는 작은 덩어리가 있고, 그 핵의 주위에는 핵보다 질량이 없다 싶을 만큼 가벼운 전자들이 핵 크기의 10만 배 거리 밖에 있는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작은 세계를 들여다볼까요?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불리는 더 작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고, 분할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각각은 쿼크 quark라고 불리는 훨씬 더 작은 입자로 만들어졌으며, 1969년에 거대 입자 가속기로 처음 측정된 이 입자들의 크기는 원자보다 약 1억 배 작습니다.


그렇다면 쿼크는 이 작은 세계의 끝이자, 자연에서 가장 작은 물체일까요? 만약 파스칼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아니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쿼크를 둘로 자르고, 각각의 조각들을 또 둘로 자르고, 또 무한정 잘라내는 모습을 상상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파스칼식 처방을 따르게 되면 결국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20-22 쪽)

위의 그림은 우리가 소위 대우주로 부르는 은하계이고(물론 우주는 이런 은하가 수십만 개나 관측되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소우주(과거에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미립자의 세계가 어울릴 것이다)인 쿼크의 세계에 대한 묘사이다.


파스칼의 사고실험처럼 우리는 가장 큰 우주, 무한한 우주에 대한 탐구를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물리학이나 관측도구로는 무한계의 탐구는 한계에 직면한다. 이것을 저자는 시공의 특성에 따른 한계라고 말한다. 과연 그 한계란 무엇인가?


가장 작은 우주, 소위 미립자의 세계에 대한 탐구 역시 일종의 한계에 봉착한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 중성미자 그리고 쿼크입자로 구성된다. 이 미립자는 더 쪼개질 수 없는 것일까? 파스칼대로 사고하면 이것 역시 계속 분할가능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쿼크 이하의 세계를 정확히 관측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미 한계 지워진 세계 속에서 한계를 가지고 살도록 정해진 것은 아닌가? 칸트는 인식의 한계를 말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세계의 한계가 존재했던 것은 아닌가? 무한과 무의 사이에서 이 한계를 고민하는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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