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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Jul 27. 2023

시작과 끝에 관한 사색 1

있을 듯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들

진실이면서도 불가능한 일 하나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머니 몸 안에 있는 작은 씨앗에서 탄생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도 그녀의 어머니 몸속 작은 씨앗에서 태어났지요. 그리고 그녀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탄생했습니다. 희미한 시간의 길을 따라 그렇게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10만 년 전 아프리카의 한 동굴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동굴 속에는 도시나 자동차, 전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불가에 앉아 있는 어떤 여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딸들을 따라 다시 시간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까지 다다를 테지요. 만약 이 딸의 딸들이 각각 커다란 양피지에 먹물 묻은 엄지손가락을 하나씩 눌러 지문을 남겼다면, 오늘날 양피지 위에는 10만 년 전의 그 여인에 서부터 당신에 이르기까지 수천 개의 지문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그다지 불가능해 보이지 않거나 적어도 이해할 만하다면,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화석 동물의 DNA에 대한 현대적 분석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선조는 원시 생물체에서 진화된 것이며, 더 나아가 원시 바닷속 소용돌이치는 단세포 생물체에서 그 진화가 시작됩니다. 생명이 없던 분자들이 무작위로 수십억 번 충돌하면서 생겨난 이 최초의 생명체는 휘몰아치는 바다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으며 계속해서 더 많은 생명체를 만들어냈지요. (7-8 쪽)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자의식이 생기면서 인간이 제기하는 가장 보편적인 질문이다. 관찰과 추론에 의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사실은 어머니라는 여인의 자궁이 우리의 요람이고 흙과 바다가 대부분인 자연이 그 기착지란 것이다.


꽃이 피고 지듯이 모든 인생도 피었다가 진다. 씨를 뿌린 꽃은 다시 피어나지만 자손을 가졌다 하더라도 지금 나의 이 삶은 일회적이다. 좀 더 크게 보면 하나의 생명체로써 나는 모든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물을 수 있고 그 흔적을 찾는다.


과학자들은 생명의 발생이 골디락스 조건이라는 특정한 화학적 상태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조건은 바다를 필요로 하며, 생명의 기원도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통찰이 놀랍게도 정확했다.


그러면 그 이전은? 생명 이전에 지구의 기원은? 태양과 우주의 기원은?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만약 빅뱅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면 그 이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까? 그리고 우주 팽창의 끝은 언제일까?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 중에서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다른 원자들은 모두 아주 오래전에 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원자들은 별이 폭발할 때 우주로 날아갔으며, 시간이 훨씬 흐른 후에 공기와 흙, 바다로 던져졌다가 결국 우리의 몸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빅뱅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통해서였습니다. 빅뱅 이론은 우리 우주가 매우 높은 밀도와 온도 상태에서 시작된 이후로 계속 팽창하면서 차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t=0, 즉 시간이 시작된 그 최초의 순간, 우주는 원자가 서로 달라붙기에는 너무 뜨거웠지요. 첫 3분 동안 우주는 가장 간단한 원자핵인 수소와 헬륨이 형성될 만큼 충분히 차가워졌지만, 그 두께가 너무 빠르게 얇아져서 탄소와 산소, 질소 등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을 모두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핵물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원자들은 수억 년 후 중력이 큰 가스 덩어리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별, 즉 항성을 형성할 때 즈음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항성들의 중심 온도와 밀도가 다시 상승하면서 핵반응이 시작되었고, 핵반응은 기존의 수소, 헬륨 원자를 다른 원자들과 융합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몇몇 별들이 폭발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원자들을 우주 공간에 흩뿌렸습니다.


우리는 망원경을 통해 폭발하는 별들을 관측하여 그 잔해들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했고, 그 결과 빅뱅 이론이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보다는 덜 확실하나, 믿을만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그 타당성이 뒷받침되고 있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무한함, 즉 무한히 작은 세계와 무한히 큰 세계에 대한 개념입니다. 원자 속에 있는 끝없이 작은 존재와 우리 망원경 너머에 있는 끝없이 커다란 존재들, 상상을 통해 존재하는 이 두 개의 끝점 사이에서, 연약하고 작은 우리 인간들은 얄팍한 현실을 움켜쥐며 살고 있습니다.(8-10 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투스가 물질의 최소 단위를 원자(Atom)로 규정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원자는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물질의 근본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이나 초미세현미경에 의해 원자보다 더 미세한 미립자들이 발견되면서 아원자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천문학 역시 우주선에 설치한 망원경이나 전파망원경을 통하여 우주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물리화학적 영역이 가시화되면서 인간의 인식은 과거에는 상상과 추측으로만 묘사되던 곳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북극성 뒤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천당마저 암흑물질로 가득 찬 무생명의 세계로 규정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미시계와 거시계의 확장이 미치는 현대적 세계관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려 한다. 물리학자이자 동시에 인문학자인 저자의 장점은 앞으로 독자들에게 인간의 연약함과 더불어 미지의 영역에 대한 본능적인 탐구심을 자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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