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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Sep 30. 2023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4

서언 4

이 책은 복제가 아니라 독창성에 관한 것이다


독창성이란 남다른 소재의 선택이라는 내용과 특이한 화법의 조형이라는 형식의 결합을 말한다. 내용(정황, 인물, 아이디어)과 형식 (사건들의 선택 및 조절)은 서로에 대해 요구하고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한 손에는 내용, 다른 손에는 형식에 대한 능숙함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이야기를 조각해 나간다. 작가가 이야기의 외형을 가지고 노는 동안 형식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핵심이 진화하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관건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는 데에도 있다. 만약에 이야기의 내용이 상투적인 것이라면 이야기의 형식 역시 상투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시각이 심오하고 독창적인 것이라면 이야기의 외형 역시 독창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이야기의 내용이 관습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이라면 그 내용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전형적인 형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독창성을 얻기 위해 기이한 시도를 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오직 남과 색다르게 보이기 위해 색다른 방식을 택하는 것은 상업적인 요구를 노예적으로 수용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할 뿐이다. 소중한 이야깃거리는 대개 몇 달, 경우에 따라 몇 년에 걸쳐 사실들과 기억들, 상상력을 모으는 노력 끝에야 만들어진다. 진지한 작가라면 누구도 이렇게 해서 얻은 자신의 관점을 빤한 공식 안에 가두어버리거나 전위적인 파편 조각들로 하찮게 흐트러뜨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17-18 쪽)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도 필요하지만 스토리의 구성이나 전달을 위한 수사적 훈련이 요구된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하여 창의적인 이념들을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완성시켜 가는 과정이다. 어떤 작품은 영감에 도취되어 단 시간에 만들어지지만 대부분의 창작물은 도자기가 구워지는데 일정한 과정을 거치듯이 오랜 시간의 훈련과 제작 기간이 소요된다.


재능 있는 예술가 혹은 비범한 창의성을 가진 천재적 예술가라 하더라도 초기의 습작 기간을 반드시 거친다. 그러나 그들이 기예가 뛰어난 장인들과 다른 것은 그들의 작품이 그 자체로 고유하고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게 재능이 없다 하더라도 독창적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할까?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란 저서에서 현대 예술이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창작과 향유가 소수의 천재나 귀족 혹은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시대를 벗어나 대중화되고 민주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디지털 사진기는 아름다운 풍경을 단시간에 수천 장 찍을 수 있고, 또 앤디 워홀처럼 사진을 이용하여 종래의 수공예술적 아우라와 달리 기술과 시대가 결합한 새로운 아우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호튼 푸트, 로버트 올트먼, 존 카사비츠 프레스턴 스터지스 프랑수아 트뤼포, 그리고 잉그마르 베르히만 같은 대가들의 개성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들이 쓴 세 쪽짜리 시놉시스는 마치 그들의 유전자처럼 그들 자신과 일치한다. 위대한 시나리오 작가들은 그들의 개성적 이야기 전개 방식으로 인해 남들과 구별되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 자신의 시각이나 통찰력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장 깊은 의미에서 그들의 시각이나 통찰력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의 작품에서 내용을 추려내어 잠시 동안 옆으로 떼어내고 작품을 구성해 나가고 있는 순수한 패턴만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의 디자인이 의미들로 가득 충전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작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건들의 선정과 수정은 그 표면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이야기의 구조는 그의 우주관, 즉 이 세계에서 어떤 종류의 사건들이 왜 일어나는가 하는 사건들의 심층 구조와 동인을 간파해 내는 작가의 안목을 드러낸다. 그 안목은 인생의 숨겨져 있는 질서를 읽어내는 작가의 지도이다.


우디 앨런, 데이비드 매멋, 쿠엔틴 타란티노, 루스 프로워 자발라, 올리버 스톤, 윌리엄 골드먼, 장이모, 노라 에프런, 스파이크리, 스탠리 큐브릭, 당신이 영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라도 당신이 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의 세계가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들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선택하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형식을 구성해 내기 때문이고, 나아가 이 두 내용과 형식을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조형해 내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에게서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나의 기대는 적성이나 기능 이전의 어떤 것에 닿아 있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각종 기교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주고, 인생에 관한 당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표현할 수 있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해 주고, 당신의 재능을 관습적인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서 탁월한 내용과 구조, 그리고 스타일을 갖춘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다.(19-20 쪽)

인간이 이야기를 활용할 때 그는 여러 가지 심리적 동기와 사회적 기대를 가진다. 심리적으로 인간의 개인 혹은 집단 무의식에 내재한 원형적 이미지나 스토리를 전달하려거나, 억압된 본능적 충동을 해소하거나 상처 난 신경세포를 대체하는 새로운 시냅스를 구성하여 치유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사회적으로 그것은 자기 인정의 욕구나 특정한 이념의 유포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제작되고 유통된다.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이나 시각에서 시작하여 타인의 공감을 거쳐 동시대의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사실 대중의 시선을 끄는 것은 아주 쉽다. 사람들은 폭력과 섹스 그리고 마약 또는 불륜과 모략 그리고 전쟁 이야기에 쉽게 몰입한다.


미디어를 가득 채운 뉴스는 주로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이다. 뒷담화의 대부분은 음모론이거나 비리 또는 흑색선전에 영향을 받은 꺼리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유포하는 즉시 사회적 영향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성적인 독창성 이면에 실존적 각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곧 인류의 공동 유산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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