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 8

잘라낸 우주(2)

by 박종규

지구와 멀리 떨어진 별에서 지구에 다가오는 별빛에도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도블러 효과 즉 가까운 거리에는 큰 소리가 멀어지는 작은 소리로 변하는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 에드윈 허블은 지구와 별 사이에 빛의 색깔이 거리에 따라 <적색 편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발견했다. 우리에게 멀어지는 별에서 방출된 빛은 파장이 긴 붉은색 쪽으로 편이되고, 가까이 다가오는 별에서 나온 빛은 파장이 짧은 푸른색 쪽으로 편이된다.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부터 도달한 별빛에서 한결같이 적색 편이가 관측되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적색 편이가 더욱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허블은 결국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 끝에 우주가 모든 방향으로 팽창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우주 팽창론의 시조는 허블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발견한 사람은 예수회 사제인 조르주 르메트르였다. 그는 허블 보다 2년 앞선 1927년에 아인슈타이니의 중력 방정식을 연구하던 중 '팽창하는 우주'에 해당되는 해를 발견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를 만난 자리에서 '당신의 수학 실력은 뛰어나지만 물리적 식견은 최악'이라며 반박했다. 그는 팽창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 상주(宇宙常數, cosmological constant)라는 새로운 항을 끼워 넣었다.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은 망원경에 도달한 빛의 파장이 길어지고 빛의 이동 경로가 갈수록 파장이 길어지는 것은 별의 이동 때문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적색 편이가 크게 나타날수록 공간은 더 많이 팽창한다. 이제 나사에서 보내온 우주의 별 사진들의 색깔을 보면서도 천문학자가 아닌 일반인도 대충 그 별들이 얼마나 먼 곳에 위치한 지를 가름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발생한다. 현재 알려진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인데, 무려 300억 광년까지 우리는 빛을 추적할 수 있다. 그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지금 보는 빛은 아득한 과거에 방출된 빛이었고, 그 당시에는 지구와의 거리가 지금보다 가까웠을 것이다.


우주가 빛보다 빠르게 팽창한다고 해도 팽창 속도가 일정하기만 하면 모든 별빛은 언젠가 지구에 도달한다. 이것은 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래서 지구와 거리가 멀수록 그 별빛은 우주의 먼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팽창하는 우주를 처음부터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거꾸로 돌리면 별이 하나도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우주 팽창론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빅뱅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팽창하는 우주'는 '수축하는 우주'가 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질량이 일정하게 보존되면서 시간을 계속 되돌리다 보면 밀도가 무한대인 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르메트르는 이것을 '원시 원자' 혹은 '우주의 알'이라 불렀고, 현대의 과학자들은 '특이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점은 크기가 작기에 양자 물리학이 적용되어야 하고 엄청나게 큰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반 상대성 이론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두 물리학을 조화롭게 결합한 이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우주의 팽창 속도가 일정하다면 초신성(별이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현상)까지의 거리를 산출하여 빛이 적색 편이되는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초신성의 적색 편이를 관찰해 보니, 이론으로 계산된 값보다 훨씬 작게 나타났다. 이로부터 내려진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 과거에는 우주의 팽창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느렸는데, 어느 시점부터 팽창 속도가 빨라지면서 천체들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70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과연 어떤 극적 사건이 발생하여 그렇게 된 것일까?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암흑 에너지에서 찾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밀도가 임계점 이하로 내려갔고 그 순간부터 암흑 에너지가 중력을 이기고 우주의 운명을 떠맡게 된 것이다. 이 에너지에 암흑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빛이나 전자기 복사와 상호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천문학적, 물리학적 장비를 동원해도 암흑 에너지는 관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주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를 공간을 밀어내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양수가 아닌 음수이기 때문에 에너지 보존 법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즉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도 반대로 이 에너지 때문에 일정한 밀도가 존재하며 빛의 속도도 더 느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물음이 제기된다. '빅뱅의 메아리'로 알려진 우주 배경 복사는 우주 전역에 걸쳐 거의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만 해도 180억 년에 달하는 데, 이 넓은 지역에 분포된 복사 에너지가 어떻게 균일할 수 있을까? 가능한 설명은 단 한 가지뿐이다. 우주 반대편에 있는 두 점이 우주 초기에 지금보다 가까웠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존의 이론에서 추론한 거리보다 훨씬 가까워서 정보 교환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초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구스는 우주가 막 탄생한 시점에는 팽창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고, 우주의 각 지점들은 이 시기에 정보를 교환하여 온도가 같아졌고, 그 후 짧은 시간 동안 공간이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물리학자들은 '인플레이션, inflation'이라 부른다. 초고속 팽창을 일으킨 주범은 '인플라톤, inflaton'이라는 반중력장이며, 인플레이션이 지속된 시간은 10의 마이너스 36초(십억x십억x십억x십억 분의 일초)에 불과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우주는 10의 78 자승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안드레이 란데와 알렌산더 빌렌킨은 인플레이션 이론에 필요한 수학을 개발하다가 놀라운 예측을 내놓았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공간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는 동시다발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양자 요동으로 인플라톤이 여러 곳에 출현하여 여러 개의 우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중 우주 이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물음이 발생한다. 왜 아직까지 우리의 우주 은하계에서 존재하는 태양계의 세 번째 별인 지구에서만 생명의 발생이 있고 다른 우주에서는 생명의 신호를 감지할 수 없는가? 결국 지구는 생명 발생을 위한 로또 복권의 당첨지와 같은 곳이라는 설명으로 귀착된다. 확률이 아무리 작아도 1등 당첨자는 어딘가 있기 마련이고 그 운 좋은 당첨지가 바로 우리의 우주였다. 이것을 과학자들은 '인류 원리, anthropic principl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다중 우주 이론은 아직 완성된 이론이 아니다. 이제 이 장의 요약은 여기서 멈추기로 하자. 사실 여기까지 읽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면 이미 당신은 현대 물리학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일단 차를 한 잔 마시고 저자의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