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2)
물질이 균일하게 퍼져 있는 우주는 따분하다. 다행히 우리의 우주는 중력이라는 힘이 존재하여 원자가 다른 원자를 끌어들이고 이로부터 온갖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중력이 작용하는 우주에는 모든 물질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지 않는 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력은 거리가 가까울수록 강해진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인력 때문에 태양과 같은 별들이 탄생했고 시공간에서 온갖 혼란스러운 일들이 벌어진다.
가장 단순한 원자는 수소이다. 하나의 양성자와 하나의 전자가 전자기력으로 결합하면 수소 원자가 된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수소는 서로에게 중력을 행사하며 상대방을 잡아당긴다. 원자들이 가까워지면 서로 충돌하기 시작하고 원자수가 많아지면서 충돌이 격렬해지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드디어 별이 탄생하는 것이다. 별의 내부에서 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거쳐 헬륨으로 변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하여 바깥쪽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별이 중력으로 내파되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이루는 이유는 밖으로 향하는 압력과 안으로 향하는 중력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상태는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핵융합 반응의 원료인 수소의 양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별이 모든 원료를 소모하여 더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없는 시점에 이르면 무지막지한 중력이 별을 압축시키고 그러면서 입자들 사이의 간격이 멀어지면서 중력에 대항하는 능력이 생기고 별은 또 한 번의 평행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백색왜성(White dwarf)이다.
중력의 세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그러므로 붕괴된 별의 중심에서 멀어지다 보면 중력이 서서히 약해지다가, 빛이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해지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 지점을 '귀한 불가능 지점'이라 한다. 이 경계면의 밖에서는 빛이 탈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계면 안에 있는 빛이나 물체는 무슨 수를 써도 탈출이 불가능하다. 귀환 불가능으로 이루어진 구면을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이라 한다. 이것을 귀점으로 외부에 있는 관측자는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별이 자체 중력으로 수축되어 이 지경에 도달하려면 처음부터 질량이 매우 커야 한다. 지구나 심지어 태양마저도 블랙홀이 되기는 체중 미달이다. 그러나 질량이 태양의 1.4배를 초과하면 중력이 충분히 강하여 블랙홀이 된다.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최초의 발견은 1964년 백조자리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 후 일단의 천문학자들은 질량을 계산한 끝에 1972년에 '블랙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결론짔고 시그너스 X-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모든 학자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블랙홀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던 스티븐 호킹조차도 그것이 블랙홀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아인슈타인도 생전에 무한대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블랙홀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의 지지자였던 에딩턴 역시 이런 말을 남겼다. "수학적 과정은 이해가 가지만 물리적 의미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1964년 옥스퍼드의 수학자 로저 펜로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필연적으로 특이점을 낳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그는 호킹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면서 빅뱅이 일어났던 순간까지 시간을 되돌려도 밀도가 무한대가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빅뱅과 블랙홀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예견한 특이점의 대표적 사례이다.
특이점에서는 물리학뿐만 아니라 수학적 함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학자들은 함숫값이 무한대가 되는 점을 특이점이라 부른다.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특이점의 사례로는 탁자 위에서 회전하는 동전을 들 수 있다. 운동 방정식에 따르면 동전의 회전 속도는 유한한 시간 안에 무한대에 도달한다. 즉, 회전하는 동전은 특이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돌려보면 각도가 작아질수록 빨라지다가 마지막 순간에 한 번 드르륵 털고 조용히 멈춘다.
이론을 펼치다가 특이점에 도달하면 더는 진도를 나갈 수 없다. 특이점 때문에 골머리를 않는 사람은 물리학자뿐만 아니다. 지구 인구의 모형에도 1960년 주어진 데이터에 기초하여 앞으로 10-20년 안에 세계 인구는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컴퓨터의 연산 능력도 초고속 성장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과학 기술도 특이점에 도달하면 인간은 자신이 창출한 기술에 압도되어 더는 기술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할 것이라며 이 시기를 특이점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면 인류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특이점이 다가온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
더구나 블랙홀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블랙홀이 질량에 반비례하는 복사열을 방출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블랙홀은 이름과 달리 완전히 검지 않고, 밤하늘에서 아주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원래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극한의 영역이라고 정의되었는데 이제 와서 복사가 방출된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호킹이 발견한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 이론이 옳다면 블랙홀은 오랜 시간 동안 질량이 서서히 줄어들다가 결국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정보는 어떻게 될까? 2004년 호킹은 결국 정보가 사건 지평선에 저장되어 있다가 입자가 방출될 때 실려 나온다고 믿었다.
블랙홀의 미래나 빅뱅 이전의 상태에 대한 여러 가지 논쟁에도 불구하고 수학자인 저자는 과감하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물질과 공간, 우주가 처음부터 아예 창조되지 않았다 해도 수학은 존재했을 것이다. 물리적 세계가 없어도 수학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학'이야말로 가장 유일한 '최초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현실적인 물리계가 추상적인 수학으로 설명된다는 것은 정말 신비롭다'라고 말했다.
시간은 물리학 방정식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시간과 무관한 관점에서 모든 것을 서술할 수 있다. 물리학자 줄이안 바버는 시간이 전혀 필요 없는 물리학을 구축하는 중이다. 현실적으로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통증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바라보고 시간의 지평 위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감동한다. 그러면 물음의 핵심은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물리적이거나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의 의식 자체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