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 11

챗봇 앱(1)

by 박종규

수학자인 저자는 시간의 문제에서 의식의 문제로 초점을 전향한다. 왜 의식일까? 그리고 우리의 의식과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진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신체의 여러 가지 기능을 대신할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예를 들어서 포클레인의 형상은 거인의 손을 연상하게 한다. 쇠로 된 커다란 손을 가진 포클레인은 인간 수십 명이 들어도 옮길 수 없는 큰 돌은 기사의 조작만으로 움직여서 원하는 곳에 가져다 놓을 수 있다. 이렇듯 문명의 이기는 인간의 신체 능력을 대체한다. 20세기의 최대 발명품은 뭐라고 해도 컴퓨터일 것이다.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를 대체하는 기계이다.


컴퓨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다.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두뇌에서 사용하는 수학적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코팅된 것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거의 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소프트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저자가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클레버봇(Cleverbot: AI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인간과 대화하는 채터봇 웹 애플리케이션으로, 영국의 AI 과학자 롤로 카펜터에 의해 개발)이라는 스마트폰의 어플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ChatGPT의 원조격이 되는 어플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클레버봇을 사용한 대화를 통해 인간 의식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그는 클레버봇과 자기 아들의 친구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서 답을 받아왔는데 독자에서 우선 어느 것이 사람의 답이고 어느 것이 AI의 답인지 구분해 볼 것을 제안한다. 질문 1: 여자 친구 있니? 응답 A: 제가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하세요? 응답 B: 관심 끄고 아저씨 일이나 신경 쓰세요. 질문 2: 넌 꿈이 뭐니? 응답 A: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어요. 응답 B: 부자 되는 거요. 질문 3: 넌 의식이란 게 있니? 응답 A: 의식이 없다면 저는.... 그러니까.... 응답 B: 그럼요, 제가 확신하는 건, 그거 하나뿐이에요. 저자는 어느 것이 아들 친구의 답인지 말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여기서는 B에게 인간냄새가 더 난다. 중요한 것은 클레버봇이 실행 횟수가 많을수록 점점 더 사람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필자는 ChatGPT에게 세 번째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 대답은 “저는 의식이 없습니다. 단지 의식처럼 보이는 언어를 생성할 수 있을 뿐입니다.”로 나왔다. 한 달 후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더 그럴듯한 답이 나올 것이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AI의 머신러닝은 발전한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에서 유리한 것은 사용자의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Perplexity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니요, 저는 의식이 없습니다. 저는 인공지능(AI) 언어 모델로, 입력된 질문이나 요청에 대해 학습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답변을 생성합니다. 감정, 자아, 의식, 주관적인 경험 등은 전혀 없고, 단지 텍스트 처리를 통해 정보를 제공할 뿐입니다.” 이 AI 어플도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모른다. 경쟁에서 밀려난 웹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처럼 IT 시장에서 한 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마트 폰이 장차 의식을 갖게 될까? 와 같은 질문은 훨씬 미묘하여 확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질문'에 속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그 영화를 본 사람이면 한 번쯤 던져봤을 것이다. 요즘 제작되는 대부분의 미래 영화는 지능을 가진 로봇들의 반란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의식에 관한 원천적인 질문들로 돌아간다. 우리의 내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나를 '나'이게끔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의식'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의식을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나의 의식이 다른 사람과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당신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당신이 느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가? 과학자들은 이 물음들을 '의식의 난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라고 부른다. 17세기의 과학자들이 천체 망원경 덕분에 우주의 변경을 관측할 수 있었고, 현미경 덕분에 물질의 세부 구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망원경 즉 fMRI와 뇌파 스캐너가 등장하여 색과 통증, 음악을 느낄 때 두뇌가 활동하는 방식을 직접 들여다보면서 측정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과 살아있는 뇌에 대한 문제는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서 과학이라기보다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내가 느끼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은 지난 수백 년 동안 과학자들을 무단히도 괴롭혀왔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가 뇌 안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뇌가 마음을 식히는 냉각기관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나'의 정체성이 뇌에 들어 있다고 믿었다. 뇌에 대하여 최초의 물리적 서술을 남긴 사람은 서기 1세기경 해부학자인 에페수스의 루퍼스이다. 그의 묘사에 의하면 사람의 뇌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좌뇌와 우뇌는 거울에 비친 상처럼 비슷하고, 그 밑에 위치한 소뇌는 대뇌의 축소판처럼 생겼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의식이 대뇌에 있다면 굳이 좌우 대칭으로 분리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며 인간의 정신이 송과선(pineal grand: 척추동물의 간뇌 뒤에 있는 내분비선)에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송과선은 아무리 현미경으로 들어다 봐도 의식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본 것은 죽은 사람의 뇌였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신경 과학은 주로 손상된 뇌를 분석하여 각 부분의 기능을 알아낸 식으로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환자의 언어 기능이 상실되면 그에 대응하는 뇌의 손상 부위를 찾는 식이었다. 그러다 19세기 말엽에 스페인의 과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이 등장하면서 신경 과학은 일대 도약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미술가가 되기를 원했고 그의 아버지는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 결과 그는 미술과 해부학을 결합하여 뇌의 구조를 보여주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즉 질산은을 신경 세포에 착색하는 기법을 개발하여, 이 기법을 뇌 세포에 적용하여 거의 예술 작품 수준의 '뇌세포 상세도'를 완성했다. 이 그림 덕분에 의학자들은 뇌가 하나의 연속물 덩어리가 아니라 수많은 뉴런이 복잡하게 연결된 불연속적 구조물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뉴런은 작은 스위치를 통해서 활성화된다. 예를 들어 첼로 연주를 들으면 나의 귀가 공기압의 변화를 감지하여 뉴런의 분자 상태가 변하면서 전기 신호(전류)가 생성되어 세포 전체에 전달되고, 이 신호는 뉴런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를 거쳐 다른 뉴런으로 전달된다. 이런 과정이 도미노처럼 일어나면서 중추 기관에 신호가 전달된다. 이런 점에서 뇌의 작동 방식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AI 어플과 비슷하다.


뇌와 컴퓨터는 다른 점도 있다. 시냅스를 통해 전달되는 화학적 신호가 관련 뉴런을 활성화시키려면 단위 시간당 흐르는 양이 임계값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단위 시간에 활성화되는 뉴런의 개수도 정보 전달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뉴런 세포들이 활성화 여부를 좌우하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스마트폰과 같은 인공 의식을 만드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뉴런은 오래 세월 진화해 온 지극히 복잡한 네트워크로, 하나의 축삭돌기에 1,000여 개의 수상돌기가 연결되어 있다. 뇌의 뉴런은 무려 860억 개에 달하므로, 하나의 뉴런과 상호 작용하는 대상은 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너무 길어졌다. 이 장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비록 현대의 뇌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장비를 통해 살아있는 뇌를 관찰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이러한 '신경 망원경'을 통해서도 의식이 뇌의 어느 부위에 있는지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즉 뇌가 어떤 물리적, 화학적 과정을 거쳐 활성화되는지 모조리 알아냈다 해도, '나'라는 의식의 출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이들을 관찰하면 생후 24개월을 넘을 시점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나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자의식>이 생기는 구체적 과정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빅뱅 이후에 의식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하나도 없었기에, 의식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의식은 중력이나 시간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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