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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이즘 이해하기 4

인도-아리아인의 기원에 관한 이론

by 박종규

인도-아리아인의 기원에 관한 일치된 학문적 견해는 아직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인디아의 토착민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 유래설, 북극 유래설, 리투아니아 유래설, 남유럽 유래설 등이 있다. 그렇지만 힌두이즘의 위대한 대표자의 하나인 스와나미 비베카난다에 따르면 "인도-아리아인은 인디아의 토착민이다. 그 어느 다른 곳에서 온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이 역시 가설이다.


고대 아리아인이 유목민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들은 생활과 경제의 대부분은 가축 사육에 의존했다. 한 목초지에서 다른 목초지로 이동하다가 혹한이나 우기에는 안전한 피신처가 필요했다. 이런 은신처를 산스크리트어로 고트라(gotra)라고 한다. 영어로 염소를 고트(goat)라고 부르는데 이것만 비교해도 인도-유럽어적 유사성이 보인다. 은신처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한 가족의 가축이 다른 가족의 가축과 섞이면서 나중에 소유주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고 이런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 판관으로서 감독관이 임명되었다.

감독관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훌륭한 성품을 가진 자로 인정된 사람들이 임명되었는데, 이들은 고트라-파티 즉 '고트라의 왕' 혹은 지배자란 뜻이다. 이들 중에서 다시 샨달리아, 바라드바자, 카쉬아파 등이 있었는데 후에 이들은 리쉬(rishi: 보는 자, 감독자), 혹은 현자로 간주되었다. 한국인들은 리쉬라고 하면 오쇼 라즈니쉬를 연상하는 데, 원래 그의 본명은 라즈니쉬 찬드라 모한 자인(Rajneesh Chandra Mohan Jain)이였고, 라즈니쉬는 제자들이 그를 부르는 명칭이며, 그는 스스로를 '오쇼(부처의 일본어)'라고 자칭했다.


한 가족이나 씨족의 아리아인인 다른 가족과 씨족을 만날 때 그는 고트라파티의 이름을 이용하여 '샨딜리아' 혹은 '바라드바자'라고 소개했는데, 오늘날 힌두인이라고 불리는 이 아리아인의 후손들은 이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해 같은 고트라 구성원 간의 결혼은 금지되었다. 그렇다면 인도 사회라고 하면 누구나 카스트제도를 떠올릴 것이다. 과연 이 제도는 처읍부터 신분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사회적 장치였을까?

저자는 카스트제도(Caste System)는 기본적으로 정성적(qualitative: 질적인, 속성적인, 또는 비수치적인 것을 의미) 성격에 기인한 것이었고 모든 카스트는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분류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고유한 성질 혹은 직업 능력에 따른 것이었다. 천성적으로 진실성, 비폭력성, 연민, 이타심과 같은 성품을 타고난 사람들은 브라흐만, 즉 사제 계급에 속하였고, 용맹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크샤트리아, 즉 전사 계급에 해당되었다. 왕과 행정관은 일반적으로 이 계급에서 나왔다. 사업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바이샤, 그 밖의 사람은 수드라에 속했고 수드라는 노농자와 수공업자 등을 포함한다.


모든 아이아인이 카스트제도를 고수하지는 않았다. 수도자 혹은 산야신((Sannyasin: 출가 수행자)들은 카스트의 범주를 초월해 있었고, 이리아인들이 아닌 사람들 그리고 음식, 결혼과 같은 아리아인의 법을 어긴 자들과 그 자손들은 아웃카스트(outcaste)로 간주되었다. 먼 훗날 카스트제도의 쇠퇴 단계에서 이들은 열등하게 다루어져 '불가촉인(untouchatables)'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성품과 경향에 따라 결정되던 카스트는 힘과 권력에 관심이 있는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세습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카스트에 근거한 자신들의 사회적 특권이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 결과 카스트제도는 타락하기 시작했다. 독자 가운데 필자가 연재한 피게티의 [21세기 자본]의 중심 테마가 '세습 자본주의'라는 것과 비교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 달리 재벌 1세에서 2세, 3세로 여전히 다수의 부와 경영권이 승계되고, 일부 법관 출신의 자식들이 다시 로우 스쿨로 가고, 일부 의사 집안 출신이 의대로 진학하는 이런 현상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은 통계적으로 확인해 보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힌두 성인들은 타락한 카스트제도를 강하게 거부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슈리 차이탄야, 슈리 라마크리슈나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어떤 카스트도 갖지 않는다고 가르쳤고 많은 사회 개혁가들 역시 카스트제도를 비난했다. 마하트마 간디도 이 제도의 병폐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오늘날 인디아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카스트제도의 망령을 한결같이 비난한다. 그렇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의 동기를 숨긴 채 카스트 간의 증오와 갈등을 이용한다. 사실 고대 사회나 현대 사회나 인간의 성품이 변화하지 않는 한,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권력과 부와 명예의 지향과 세습으로 인한 갈등과 암투는 여전하다.

마지막으로 고대 아리아인들이 추구했던 보편적 생애 단계를 살펴보고 마치기로 하자. 그들의 생애는 1. 브라흐마차리아의 단계로 시작하는 데 7세에서 11세까지의 모든 아리아인 소년은 안테바신(학생)으로서 구루(스승)의 집에 가서 살면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데, 학업의 소요 기간은 약 12년 정도이다. 한국 프로 바둑계의 조훈현 기사가 이창오 소년을 집에 데리고 함께 살면서 바둑을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 시기에 학생은 베다 학습과 더불어 문법, 시, 서사시, 도덕, 수학, 천문학을 함께 공부했다. 스승은 신-비전을 통한 해방이 교육의 궁극 목적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했다고 한다.


2. 가르하스티아의 단계. 이 시기는 결혼과 함께 시작된다. 스승의 허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학생은 같은 카스트의 젊은 여자와 결혼을 한다. 결혼 후 그는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으로서의 삶을 산다. 그는 정기적으로 베다를 공부하고 정직하게 돈을 벌고 손님을 환대하고 자식을 기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부모와 같이 살고 있는 친적들을 부양해야 한다. 그리고 예의로서 여성을 대하고 명절과 축제일에 소망하는 선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가장의 의무이다. 이것만 보면 아리아인 한 남성 가장에게 맡겨진 짐이 무척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바나프라스티아의 단계. 가장이 '자신의 피부가 주름지고 머리가 하얗게 된 것을 볼 때' 그는 생애의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설 때가 된 것이다. 그는 은퇴하여 숲으로 들어가는 데, '이때 아내는 같이 동반하거나 아니면 아들이 보호하도록 한다.' 그는 나무껍질을 입고 거친 오두막에서 산다. 정기적으로 베다를 학습하고 여러 경배 의식을 수행한다. 그의 음식은 주로 채소, 과일, 꽃, 뿌리인데 조리를 하기도 하고 않기도 한다. 삶의 영적인 목표를 향해 아주 소박하고 종교적인 극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고대의 이런 전통을 그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힌두인은 사색적이 된다. 대부분 그들은 기도와 경배로 은퇴의 삶을 보낸다.

4. 산야사의 단계. 네 번째 단계는 은둔자의 삶에서 수도자 혹은 고행자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행하는 단계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1) 학업을 막 완성하고 세상을 포기하고자 하는 내적 충동을 느끼는 학생. 2) 아이가 없는 가장. 3) 과부. 4) 방랑자. 5) 은둔자 또는 70세가 된 사람으로서 자식들이 생활에 안정을 찾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세상을 포기하고 수도자가 되는 것이 적당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힌두이즘은 다른 고대 종교와 마찬가지로 많은 명칭들과 분파들을 갖고 있다. 많은 분파들이 고대 베다의 금욕의 이상에 근거한 자기만의 고유한 수도원의 표식을 갖고 있다. 우리도 한 번쯤 이들의 삶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늙어서도 권력욕이나 명예욕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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