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보는 눈 6

관리주의에서 기업주의로: 후기 자본주의 도시 거버넌스의 전환

by 박종규

2015년 이전 20년 동안 저자의 주된 학문적 관심은 사회변화, 특히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와 축적의 조건하에서 도시화의 역할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는 자본주의가 독특한 역사지리를 생산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도시화의 물리적, 사회적 경관이 독특한 자본주의적 기준에 따라 형성됨으로써 자본주의의 미래 경로에는 어떤 제약들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는 자본주의 하에서 도시과정이 자본순환과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해 형성되어도 그 과정이 다시 시간과 공간의 그 이후 지점에서 자본축적의 조건과 환경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1985년 프랑스의 오를레앙에서 열렸던 한 컬로키엄(Colloquium: 전문적인 주제에 대해 참석자들이 능동적으로 대화하고 비평하며 지식을 심화시키는 데 목적을 둔 학술적 토론회) 선진 7개국의 8개 대도시에서 온 학자, 사업가, 정책입안가들이 모였다. 이 모임의 목적은 선진 자본주의세계의 많은 대도시들이 직면한 경제적, 재정적 침체에 대해 도시정부들이 할 수 있는 행동노선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그 모임에서 합의된 것은 도시정부가 훨씬 더 혁신적이고 기업주의적이어야 하며, 침체된 조건을 경감시키고, 이를 통해 그 도시 주민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방법론의 문제에 대하여 이견이 발생했다. 즉 도시정부들은 새로운 기업의 창출에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심지어 직접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중앙/지방 도시정부(각 시도)의 과제이기도 하다.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과연 도시정부들은 단순히 낡은 형태의 경제활동을 떠받치면서 새로운 형태의 경제활동을 유치할 수 있도록 인프라, 입지, 조세 혜택 그리고 사회문화적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한정해야 하는가?


사실 현재 한국의 경우 지방 분권이 제대로 이루어져 못한 이유는 국세수입과 지방세수입의 격차와 지방 도시정부의 시장 혹은 군수가 행정력보다 정치적인 배경에 둔 인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제적 효율성이 없는 다수의 선심성 공약을 쏫아내고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배정받아 인프라를 건설하고 방치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국 각지의 국제/국내 비행장 건설과 현재 활용도이다. 이런 인프라 실패의 또 다른 대표적 예는 F1 경기장 건설이다. 더 안 써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시도가 나누어지면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소수의 정치권력 엘리트 집단을 제외한 다수의 일반국민들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도시 기업주의로 완벽하게 이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영국의 많은 지방정부들은 새로운 압박과 가능성에 대해 비교적 최근까지 반응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뉴올리언스 같은 도시들은 계속해서 연방정부의 보호하에 남아 있으며 존립을 위해 교부금에 근본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다양성의 밑에는 도시 관리주의에서 일종의 기업주의로의 이행이 1970년대 초반 이래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주제로 남아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도시의 특정 지역에 기업유치에 성공한 사례는 수도권이나 200만 명 이상의 대도시 지역 이외에는 별로 없다.


도시 기업주의에 대해 이제 저자는 좀 더 철학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그는 기업주의의 도시과정을 정치경제적 발전의 수동적 측면보다 능동적 측면으로 이해하는 언어와 결합할 경우, 도시의 물화(reification, 物化, Verdinglichung: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물건과 물건사이의 관계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아래에서, 노동 상품은 재화, 화폐 및 자본의 형태를 취하며 따라서 실제 생산자와는 독립적이 된다. 이 과정을 상품과 생산자로부터의 생산자 소외라고도 한다. 물화와 같은 의미로 마르크스는 대상화, Versachlichung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대상화의 반대되는 의미를 인격화, Personifizierung라고 불렀다)라는 큰 위험을 제기한다.

여기서 문제는 불필요한 물화의 희생에 빠지지 않으면서 과정과 대상 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개방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공간에 기반을 둔 일단의 사회적 과정들, 도시화라고 칭하는 것은 수많은 인공물을 생산한다. 뒤이은 사회적 행동은 이 인공물들을 고려해야 한다. 수많은 사회적 과정(예로 출퇴근과 같은 통근 과정)은 이들에 의해 물리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기존의 서울의 교통 인프라 즉 지하철 노선이나 일반 도로 그리고 새로 건설되는 분선형 철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 역시 특정한 제도적 편제, 생산된 공간, 정치행정체계, 권력의 위계를 토해낸다. 이들 역시 일상적 실천(시민의 일상적 행위)을 지배하고 연이은 행동의 경로를 규정하는 객관화된 성격을 '도시'에 부여한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하비가 제시하는 도시 거버넌스(정부, 시민, 기업, 비정부 기구 등이 협력하여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방식)를 위한 대안적 전략들을 살펴보고 마치기로 하자. 그는 여기에 네 가지 기본적인 선택이 있다고 말한다. 1) 국제 노동분업 내에서 경쟁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을 위한 특정한 이점의 전유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태리 블로냐의 경우와 에밀리아-로마냐의 신산업 발전의 급부상처럼 강력한 지방정부의 활동에 의해 지원되는 산업과 마케팅의 혼합에 대한 신중한 관심은 집중경제와 효율적 조직화에 기반을 둔 신산업 지구들의 막강한 성장과 이들의 편성의 촉진이다.

2) 도시지역은 소비의 공간적 분화와 관련된 경쟁적 지위를 향상하려고 할 수 있다. 이는 관광과 퇴직자 유치를 통해 도시지역으로 화폐를 끌어들이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1950년 이후 도시화의 소비주의 양식은 대량소비로 이끌기 위한 기반의 지속적 확장을 촉진했다. 경기 침체, 실업, 높은 대출비용은 이와 같은 가능성을 줄였지만 여전히 상당한 소비자 권력(한국의 예시로는 구매력이 있는 부유층 혹은 공직/사학/군인 연금 수령자층)이 산재해 있다. 이런 소비자의 돈을 끌기 위한 투자는 만연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점차 생활의 질에 집중한다. 무엇보다도 도시는 살거나 방문하거나 놀고 소비하기에, 혁신적이고 창조적이고 안전한 장소로 보여야만 했다. 저자는 성공한 도시의 예로 미국의 볼티모어, 영국의 13개 산업도시(리즈, 브래드포드, 맨체스터, 리버풀, 뉴캐슬 등의 도시 재생 사업을 들고 있다. 과연 한국의 여러 도시는?


3) 기업주의는 대형금융거래, 정부 또는 정보의 수집과 가공에서 핵심적 통제 및 명령 기능의 획득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으로 강하게 물들어있다. 이런 기능들은 특히 값비싼 인프라의 제공을 필요로 한다. 전 세계 통신망 내에서 효율성과 중심성은 핵심적 의사결정자의 개인적 상호작용이 요구되는 부문에서 필수적이다. 인터넷의 속도와 더불어 데이터 처리 능력의 향상 그리고 더 능률적인 AI와의 손쉬운 협력을 위해 지금 전 세계가 국가 간 혹은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그러므로 대도시가 강점이긴 하나 국가 차원으로 보면 반드시 대국이 소국과의 경쟁에서 더 유리한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서울이 가장 유리하나 지방의 중요 도시도 혁신을 통하여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도시의 행정가나 시민의 의삭이 이런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느냐에 달려있다.

4) 중앙정부(또는 미국의 주 정부)를 통한 잉여의 재분배 측면에서 경쟁우위는 매우 중요하다. 영국의 브리스톨의 경우나 미국의 롱비치-샌디에이고의 경우에서 보듯이 도시 번영을 위한 활력을 제공한 것은 중앙정부의 군사방위 계약 때문이었다. 이는 이 정책에 수반되는 엄청난 양의 돈 때문이지만, 또한 이것이 갖는 이른바 '첨단' 산업의 고용유형과 파생기업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의 지배계급 동맹이 도시존립을 위한 수단으로 재분배 메커니즘을 전유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의 경우 2040년 수도권 광역도시계획과 경남도 도시정책 마스터플랜이 대표적 정책이지만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올라온 광역도시계획으로 보면 2013년 수립된 것은 청주권, 광주권, 부산권, 대구권, 대전권, 창원권, 광양만권, 수도권, 전주권, 전남 서남권, 제주권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계획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는 정부도 언론도 성실히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뉴스를 도배하는 것은 주로 정치적 이슈나 재난 혹은 전쟁 관련 뉴스뿐이다. 도대체 한국의 공영방송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보론을 보면 하비의 이 논문은 그의 논문들 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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