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압축과 포스트모던 조건
이 장에서 저자가 던지는 물음은 우선 "공간과 시간의 쓰임과 그 의미가 포드주의(20세기 초 미국의 헨리 포드가 개척한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현대 산업 사회 및 노동 경제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산업 공학 및 제조 시스템)에서 유연적 축적으로 전환함에 따라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지난 20여 년 동안 정치적, 경제적 실천과 계급권력의 균형, 그리고 문화적, 사회적 생활에 혼란스럽고 파괴적 충격을 준 강력한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 교통 및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거리와 시간의 제약이 줄어들고, 전 세계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현상)의 국면을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유연적 축적은 부분적으로 생산에서 새로운 조직형태가 등장하고 기술이 빠르게 혁신되면서 이루어졌다. 생산의 가속화는 수직적 통합의 포드주의 경향과 반대로 수직적 분리(하청, 외주 등)로 조직이 변화하면서 성취됐다. 금융 집중의 심화에 직면하자 우회생산은 증가했다. 다른 조직적 변화들은 새로운 전자제어기술과 소규모 배치 생산 등과 결합하여, 많은 생산 부분에서 회전 시간을 줄였다. 이는 관세정책을 발표한 미국의 트럼프 집권 2기 이전의 세계 시장 구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생산에서 회전시간의 가속화는 교환과 소비에서 그에 걸맞은 가속화를 수반한다. 통신, 정보흐름 체계의 개선은 유통기술(포장, 재고관리, 컨테이너화, 시장반응 등)의 합리화와 결합하여 상품이 더 빠른 속도로 시장체계를 통해 유통될 수 있도록 했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즉시 온라인 쇼핑에서 쿠팡의 로켓배송과 중국 유통 플랫폼인 알리와 테무의 저가 공세가 연상될 것이다. 전자은행과 신용카드는 화폐의 역방향 흐름의 속도를 개선시킨 혁신의 일부였다. 금융서비스와 시장도 마찬가지로 가속화되었고, 지구적 주식시장에서 '24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 됐다.
소비 영역의 많은 발전 가운데 두 가지가 특히 두드러진다. 대량판매시장에서 유행의 동원은 의류, 장신구, 장식품에서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생활방식 및 여가활동의 부분(레저와 운동습관, 대중음악의 스타일, 온라인 스트리밍 산업과 아동용 게임 등)에서 소비 속도를 가속화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두 번째 경향은 재화의 소비에서 서비스의 소비 즉 개인, 사업, 교육, 보건서비스뿐만 아니라 머리를 식히는 오락거리 등으로 이행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서비스(박물관 관람, 록 콘서트나 영화 보기, 강연이나 헬스클럽에 다니는 것)의 수명은 자동차나 세탁기의 수명보다 훨씬 짧다.
이제 저자는 자본의 회전시간이 대체로 가속화됨에 따라 드러나는 결과 가운데 포스트모던한 사고, 감성, 행동방식과 특별히 연관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어본다. 첫 번째의 주요 결과는 패션, 생산품, 생산기술, 노동과정, 사고와 이데올로기, 가치와 기존 관행 등의 즉흥성과 순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견고한 모든 것들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라는 느낌은 어느 때보다 만연해 있다. 새로운 과학 에세이들은 주로 장구한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의 천체만원경으로 포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은하들의 발견에 대한 이미지들과 영상들은 인간의 유한한 생의 주기를 더욱더 순간적이고 즉흥적으로 대응하게 만든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일회용(throwaway) 사회의 역동성은 1960년대에 이미 나타났다. 이는 생산된 재화를 한번 쓰고 버리는 것(엄청난 쓰레기의 양)뿐만 아니라 사물, 건물, 장소, 사람에 대한 가치, 생활양식, 안정적 관계, 애착 그리고 기존의 행동방식과 존재방식을 내던져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지적했듯이 대중사회의 세속적인 사람(das Man)은 평균적 일상성 속에서 익명화되고 획일적이고 일회적인 소비 양식에 압도당한다.
저자는 포스트모던적 즉흥성에 대하여 이것이 장기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지만 그에 대응하는 전략 중 하나는 장기계획보다 단기계획을 지향하며, 어디에서든지 간에 단기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전략은 최근 미국 경영의 악명 높은 모습을 낳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경영 수행은 상당한 긴장을 초래하여 이른바 '여피증후군(yuppie flu: 재능 있는 사람들의 수행 능력을 마비시키고 장기간 지속되는 독감 같은 증세를 만들어내는 심리적 스트레스 여건)'이나 금융종사자들의 광적인 생활양식(일중독과 권력탐닉) 같은 온갖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한편 즉흥성의 생산에 숙달되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에는 취향과 여론의 조작이 뒤따른다. 이 조작은 우리를 유행의 선도자로 만들거나 또는 시장에 범람하는 이미지들로 내면을 흠뻑 배어들게 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의 플랫폼에 장기적 혹은 단기적으로 뜨는 자동차나 신상품 광고를 보면 이런 현실을 쉽게 느낄 것이다. 저자는 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현대 광고에서 돈, 섹스, 권력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뺀다면 남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어떤 의미에서 이미지 자체가 상품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상품 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의 주장을 가능하게 했다. 자본주의는 이제 상품 그 자체보다는 기호, 이미지, 기호체계 생산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미지는 다른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기업, 정부, 정치 지도층과 지식인 리더 모두는 권위와 권력의 배경의 일부로 안정된 이미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정치의 미디어화는 오늘날 전반에 만연해 있다. 이 시간에도 세계 언론의 뉴스와 소셜미디어에는 매일 같이 정치 관련의 소식들이 올라온다. 결국 이것은 순간적, 피상적, 기만적 수단이 되고 이에 따라 개인주의적 순간성의 사회는 공동가치에 대한 향수를 촉진한다. 영원성의 이미지와 권력 이미지의 생산과 마키팅은 상당히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지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한편 이미지의 적응성, 유연성, 역동성이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자가 접한 포스트모던 조건에 대한 경험을 살펴보자. 우선 그는 포스트모던한 혼합에는 결단코 맞서자고 하였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이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에 대한 빈번한 무시를 보면 짜증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메타이론(증거 1호로 맑스 이론을 포함하여)의 모든 지침이 모두 사람의 머리에서 삭제되어야 한다는 독단은 전혀 와닿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1975년경 자본이 작동하는 방법에 주요한 전환이 일어났다. 유연적 축적, 탈산업화, 국제금융의 힘의 증대, 지구화와 시공간 압축에 대한 흐름 등 모든 것이 노동 계급의 제도와 문화의 힘을 파괴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전환을 해방적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에 이것의 절반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에 2005년에 가서야 이야기 전반을 논할 수 있었다. 결국 저자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이란 책을 출간하면서 새로운 사고들을 확인했으며, 자본이 이들의 생산에 어떻게 개입했는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 책 역시 한국어 번역본이 있으니 필요한 사람은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필요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고전이 된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책 [포스트모던의 조건]과 비교해 보면 유럽의 지성과 미국의 지성의 견해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