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국주의: 탈취에 의한 축적
자본주의의 존립은 해명을 요구하는 불가사의이다. 저자는 이 문장으로 서술을 시작한다. 사실 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가 여전히 세계화되면서 여전히 존립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그가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다중적 위기와 재조직화 그리고 이로 인해 절박한 종말에 달했다는 것이 좌파 및 우파 모두의 예측이었기 대문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는 자본주의가 공간의 생산을 통해 존립하고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으나,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아주 다른 이유에서 그리고 다른 주장을 활용하여 공간 생산의 특정한 형태로서 제국주의가 그 수수께끼의 답이라고 고찰했다. 그러나 이 둘은 이 해법이 그 자체의 결정적인 모순들로 인해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저자가 1970년대에 이 문제를 고찰한 방법은 자본축적의 내적 모순에 대한 '시공간적 조정'의 역할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주장은 과잉축적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의 만연한 경향과 관련지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지리적 팽창은 장기적 수명을 갖는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교통-통신 네트워크, 교육과 연구 등)에 대한 투자를 동반한다.
지구자본주의는 1970년대 이후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과잉축적의 문제를 겪어왔다. 현재 미국의 관세정책이나 보호무역 그리고 유럽의 우파 정권의 탄생 등은 이러한 위기로 인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 혹은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거대한 산업국가의 과잉생산(제조업 혹은 천연자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제국주의의 등장으로 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미 1990년대 후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것처럼, 미국의 입장에서 군사력에 의해 뒷받침된 개방적 제국주의를 향한 명백한 이행은 반대로 미국의 그동안 헤게모니가 약화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아가서 1980-199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와 보다 심각하게 1997년 동아시아와 농남아시아를 소진시킨 위기(여기에는 1997년 말 한국의 IMF 외환위기도 포함된다)를 통해, 그리고 2000년대 초 러시아를 삼키고 뒤이어 티르키에,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이동했던 위기를 역시 신제국주의의 등장으로 이해한다. 즉 기존의 기반에서 확대 재생산을 통해 축적하기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탈취에 의한 축적'의 시도가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하비가 부르는 신제국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2020년에 저술한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는 저서 이외에 트럼프 재선 이후의 세계정세에 관한 그의 강의나 글은 찾아보기 힘들어서 소개하기 아쉬운 점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바란다.
자본축적에 관한 마르크스의 일반이론은 고전 정치경제학의 가정과 포괄적으로 상용하면서 시원적 축적과정을 배제하는 어떤 초기의 가정하에서 구축된다. 이 가정들은 사적 소유의 제도적 관계를 통해 자유롭게 기능하는 경쟁적 시장, 사법적 개인주의, 계약의 자유, 법과 통치의 적절한 구조들이다. 이것들은 '촉진적 국가'에 의해 보장되고, 국가는 또한 가치의 저장과 유통의 매개자로서 화폐의 보전성을 보호한다. 예를 들어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금리 인상이나 인하에 의해 세계 경제가 받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맑스의 탁월함은 시장의 자유화, 즉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의 신조가 누구든 잘 살 수 있는 조화로운 상태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대신 이는 사회불평등을 점점 심화시킬 것이며, 특히 이러한 노선을 개척해 나갔던 영국과 미국의 지난 30년간에 걸친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경향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것과 같은 과잉축적의 만성적 위기에서 정점을 이루는 심각하고 심화되는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다. 지금처럼 미국이 다시 제조업의 기반을 자국으로 옮기면 현대의 신흥공업국(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 멕시코,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나 제조업 기반 반도체 수출국인 일본, 대만, 한국 등에서 과잉생산된 제품들은 치열한 경쟁이 재개된 세계 시장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들은 흔히 특정 영토의 또는 지역의 편제로 배치되며, 보통 어떤 헤게모니의 중심지에 의해 지배된다. 지구적 브르주아 통치의 두 번째 단계는 냉전시대의 경우, 나토조약기구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중심은 각각 미국과 소련이었으나 미국은 이 시기에 유일한 자본주의 강대국으로서 군사적, 정치적을 동반했다. 그 결과 경제적 필요성의 구현보다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더 막강한 미국의 헤게모니적 '초제국주의'가 구축되었다. 미국은 자국의 시장을 다른 국가에 개방하여, 1960년대에 독일과 일본에서 등장한 잉여생산능력의 일부를 흡수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이를 통해 주 간 고속도로체계의 구축, 교외화의 확충과 미국 남부와 서부의 개발 같은 내부 시공간조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체계는 1970년경에 붕괴되었다.
미국의 잉여달러가 세계시장에 홍수를 이룸에 따라 자본통제를 강화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산 영역에서 위협을 받은 미국은 금융을 통해 그 헤게모니를 보여줌으로써 반격할 수 있었다. 이 체제가 효과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시장 일반 특히 자본시장이 국제교역에 개방되도록 해야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미국은 IMF 같은 국제적 지렛대를 사용해 새로운 경제적 정설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집착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금융자본은 브르주아적 지국통치의 세 번째 측면으로 변화한다. 저자는 1980년대의 라틴아메리카와 1997년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통화에 대한 해지펀드의 공격은 IMF가 요구하는 야만적인 디스플레이션정책들에 의해 뒷받침되었는데, 이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 경제적 진보를 후퇴하게 만들었다.
이 체계는 월스트리트-미국 재무부 복합체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도쿄, 런던, 프랑크푸르트 외 다른 많은 세계도시의 금융중심지들이 참여로 다면적 측면을 갖는다. 이는 초국적 자본주의 기업들의 등장과 연계된다. 그러나 투기적 풍요의 10여 년 뒤, 2001년에 미국 내 집중적인 경기후퇴는 미국이 이러한 상황에서 면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1990년 대 동안 '세계경제를 추동했던 것과 같은 폭발적 수입은 미국의 무역계정 및 경상계정의 적자를 기록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해외 소유자들에 대한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의존성의 증대' 그리고 '자본도피 및 달러 붕괴에 따른 미국경제의 전래 없는 취약성'을 초래했다.
저자는 트럼프 1,2기가 등장하기 전에 이런 예측을 한다. '미국이 신속하고 평화롭게 작별을 고할 것 같지는 않다. 어떠한 경우든 이 전환은 동아시아 자본주의가 미국시장에 대한 종속성에서 벗어나 아시아 그 자체의 내부에 있는 내적 시장을 지향하도록 하는 재조정을 동반할 것이며, 이에 관한 조짐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중국 내부의 거대한 근대화 프로그램으로 인한 일본-대만-한국의 잉여자본을 점진적으로 빨아들이며, 이로 인해 미국으로의 흐름을 감소시키는 데 경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점이 강조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내에서 발생할 일은 신제국주의가 어떻게 구축될 것인가에 매우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다.'
저자의 이 글은 2003년에 출판된 [신제국주의]에서 전개된 일반적 주장의 요약이라고 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트럼트의 관세정책 이후 자본주의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한 자료가 별로 없지만 적어도 미국이 향후 50년간의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가는 시대나 국가별로 다르지만 본 내는 초제국주의의 부활과 향후 50년 동안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복잡한 속셈은 다 포장된 것으로 보인다. 사업가는 거래나 계약 시 그동안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신뢰마저도 생존이나 자국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 특히 국제정치의 냉정한 세계이다. 다윈이 말한 것처럼 민족국가 역시 일종의 '유기체라면 그의 지속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강대함이나 강력함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적응성과 유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