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도시적 근원: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한 도시 개조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대체로 도시화에 따른 건조환경 투자를 '국민경제'라고 불리는 어떤 가공적 실체보다 상당히 부차적인 분야로 다룬다. 이에 따라 '도시경제학' 분야는 열등한 경제학자들이 연구하는 영역이고, 탁월한 학자들은 다른 분야에서 거시경제학적 전공 능력을 발휘한다. 하비가 보기에 심지어 탁월한 학자들이 도시과정에 주목할 경우에도 이들은 공간적 재조직화, 지역개발, 도시의 건설 등은 더 큰 규모의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단순한 결과로 여긴다. 경제지리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려한 2009년 [세계은행개발보고서]에서 저자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어떤 것이든지 도시개발 및 개발지역에서 파국적으로 잘못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경제 전체에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저술했다.
저자들은 실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일반적 묘책(국가가 토지시장 및 부동산시장에 어떠한 심각한 규제도 하지 못하게 하고, 도시 지역 공간계획을 통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 등)을 도시적 상황에 응용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경제성장을 이끄는 최상의 방법인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들의 시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토지는 일반적 의미의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지는 미래지대에 대한 기대에서 파생되는 자본의 의제적 형태이다. 지대수익을 최대화하려는 시도는 맨해튼과 런던 중심부로부터 저소득 가구나 심지어 중간소득 가구들을 몰아냈고, 이로 인해 계급격차와 특권을 갖지 못하는 주민들의 복지에 파국적 영향을 초래했다.
그 시대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2008년 말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9년 3월까지 토지시장은 약 5.3%가 하락했으며, 특히 수도권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같은 해 하반기에 정부의 재건축 관련 규제 완화 정책이 발표되면서 투자 심리가 개선되고,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반등하고 전세 가격도 상승하여 부동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반면에 지방 부동산 시장은 1년 내내 침체된 분위기였다. 그 후 문재인 정부의 시기( 2017-2021) 주택 규제 강화 정책이 시행되었으나 시중 유동성 증가와 저금리 기조가 맞물려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억제하지 못하고 2000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가격 상승을 기록했다. 오히려 서구의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반대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실패한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자의 관점이 주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비판에 있다는 점을 유념하자.
다시 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저자는 1973년 이후 수백 번의 금융위기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는 점과 비교해 보라) 이 가운데 상당수는 부동산 개발 혹은 도시개발이 주도했다고 진단한다. 이 개발의 과정 이면에는 '비합리성의 충만' 그리고 금융가들의 '동물적 충동'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국가경제연구국은 비교적 최근까지의 미국에 일어난 부동산 붐이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유발한다는 또 다른 사례를 발굴했다. 괴츠만과 뉴먼이 뉴욕의 고층빌딩 건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만든 그래프를 보면 1929년, 1973년, 1987년, 2000년 붕괴에 앞선 부동산 붐은 첨탑처럼 치솟아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뉴욕의 고층빌딩들은 '단순한 건축운동 이상이며, 주로 광범위한 금융현상을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한다.
부동산시장 붐과 불황은 분명 투기적 금융흐름과 복잡하게 뒤얽혀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거시경제 전반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자원고갈과 환경파괴에 모든 방식으로 외부효과를 미친다. 하비는 부르주아적 이론과 마르크스주의적 도시학자들 둘 다 도시개발이 미치는 거시경제의 혼란에 대한 통찰력(자신도 포함하여)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누구도 도시화과정과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 인간생활과 관련된 물리적 구조의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주택, 도로, 공원, 공장, 사무소, 상하수도 시설, 문화 및 교육시설을 포함하는 환경구조의 총체)에 관한 이해를 자본운동의 법칙에 관한 일반이론에 통합시키고자 하는 진지한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맑스의 접근이 지닌 장점은 그 시대의 특이하고 특수한 조건들로부터 추상화의 방법을 통해 자본운동의 일반법칙을 명료하게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문제를 동반하는데, 그의 이론을 현실과 비교하면 '회전운동의 메커니즘을 통해 풀려난 화폐자본은 신용체계의 발달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하고 동시에 신용체계의 한 기초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이자율이 공급과 수요, 경쟁상태에 의해 설정된다는 점을 배제하여 버린다는 것이다.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금리는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미국 경제의 성장률, 인플레이션 수준, 금융 시장의 안정성 및 국제 수지 등 경제적 요인들과 함께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 심리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결정된다. 미국의 현재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충돌은 단기적인 정책적 결과와 장기적인 시장의 추이 결과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 하는 입장의 차이에 기인한 갈등이다. 저자는 이런 거시경제적 요인보다도 도시화를 통한 자본축적의 분석에 역점을 둔다. 즉 도시화는 자본주의 역사 전반에 걸쳐 잉여자본과 잉여노동의 흡수를 위한 주요 수단이었다고 이제까지 여러 글에서 주장했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문제를 부동산시장의 맥락에서 생산자본 순환과 의제자본(擬制資本, fictitious capital: 실제 생산 활동에서 발생하는 가치가 아니라, 미래의 잉여가치에 대한 청구권을 나타내는 가공의 자본) 순환이 신용체계 내에서 어떻게 결합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이제 너무 전문적 용어가 많이 나와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할 것이다. 하비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금융기관들은 개발업자, 토지 소유자, 건설회사에 대출을 해주어 샌디에이고 주변에 방대한 교외 주택을 건설하고 플로리다와 스페인 남부에 고급 콘도를 건설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이 대출은 2배의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경기가 좋을 때의 경우를 예상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금융기관마저 투자가 아니라 투기성 대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금융기관을 좌우하는 어떤 강력한 국가권력이 이런 부동산 정책을 펼칠 경우이다.
이제 저자가 예로 드는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고 마치기로 하자. 중국의 일부 주요 도시에서 이루어진 전대미문의 광범위한 토지수용과 철거(베이징에서는 10여년간 300만 명에 달하는 주민이 쫓겨났다)는 중국 전체에 거대한 도시화의 추진으로 적극적인 탈취경제의 붐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 중앙정부가 은행에 준비금을 단계적으로 상승시킴으로써 이런 붐을 통제하고 인플레이션의 압박을 진정시키려는 시도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2007-8년에 일어난 미국의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대미 수출이 20프로 감소했고 2008년에만 2,0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약 6,000억 달러를 쓸 수 있었기에 이를 극복하고 2009년 가을에 일자리 순감소를 300만개로 줄었다.
하비가 보기에 최소한 표면적으로 하부시설 투자와 도시화 프로젝트의 거대한 파도가 내륙을 좀 더 부유한 연해지역으로 연결하고, 북부를 남부와 연결하면서 이와 같은 공간 통합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상하이와 베이징 간 고속철도는 사업가나 중상위 계층에게는 좋겠지만, 노동자들이 설날에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은 되지 못한다. 구글의 자료에서도 일반 노동자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고속철도 이용을 망설이거나, 2등석이라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 어느 나라이든 국외에서 보는 것과 국내에서 아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유의하자.
그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도시가 계급투쟁의 대상으로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은 아닌가? 자신의 독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농촌, 농민, 원주민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왜 도시에 집중을 해야 하는가? 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세계를 바꾸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투쟁의 장소이라는 점에서 저자는 이견이 없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 도시 생산자들은 일어나서 자신들이 집단적으로 생산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불법이민이지만 십 년 넘게 그 도시의 생산자로 살아온 자들을 영주권이나 취업비자가 없다고 바로 쫓아내는 것이 자유의 나라를 상징하는 미국이라면, 앞으로 이런 세계 현실에서 생존하기에는 약한 자들의 미래는 너무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