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보는 눈 7

투쟁적 특수주의와 지구적 야망

by 박종규

저자는 1988년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면서 이 도시에 있는 '로버(Rover : 1886년부터 2005년까지 존속한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명이자 회사명으로 현재 상표권은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소유주인 인도 타타 그룹에게 있으며, 회사의 본체는 상하이자동차 산하에서 로위와 MG 모터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자동차'공장의 미래에 대한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73년까지만 해도 옥스퍼드 동부에 있는 카울리 자동차공장은 약 2만 7,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했으며, 이는 옥스퍼드 대학이 고용한 3,000명 미만의 노동자에 비하면 상당한 수였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에 이 자동차공장은 영국 노사관계의 미래를 둘러싼 격렬한 계급투쟁의 진원지 중 하나로 떠올랐다. 노동운동은 즉시 지역 노동당의 형태로 강력한 정치적 도구를 만들어내었고, 지역 노동당은 결국 1980년 이후 지방의회를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88년 이후 경영 합리화와 인원감축으로 고용은 1만 명 규모로 줄었고, 1993년대에는 5,000명 이하로 줄었다. 이제 자동차 공장에는 완전 폐쇄의 위기가 임박했다. (독자는 한국의 쌍용차 사태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 공장의 미래가 옥스퍼드 경제에 어떤 명향을 미칠지를 연구하는 연구집단이 구성되었고, 그리하여 '옥스퍼드 자동차산업 연구 프로젝트(OMIRP)'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저자인 하비가 이 조직의 대표를 맡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 이유로 캠페인에 적극적이지도 못했고 많이 참여하지도 못하고 대신에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결과를 출판하는데만 도움을 주었다고 회고한다. OMIRPD의 조정자인 테레사 헤이터는 3년짜리 연구지원비를 받아, 그 책에 카울리의 역사, 캠페인의 실패, 기업자본에 대항한 저항세력의 집결에 따르는 정치적 문제를 담아냈다. 그녀는 다양한 배경의 필자 군을 구성했고, 가장 잘 아는 주제에 대해 1장씩 집필하도록 요청했다. 저자 역시 공동집필자로 책에 참여하고 이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한눈에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이 책에는 나중에 저자가 공장 경험에서 나온 활동가의 목소리 즉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쫓아 '투쟁적 특수주의(Militant particualism: 특정 집단이 자신의 특수한 이해관계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더 보편적인 이해관계나 거시적, 장기적 정치 상황에 대한 고려를 거부하는 성향)'라고 부른 입장은 연구자들의 추상적인 판단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고, 지역사회의 관점은 여러 대목에서 생산라인의 관점과는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헤이터와 하비는 결론을 두고 논쟁을 벌였고 그녀는 공장의 투쟁적 노조 위원들의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심지어 저자를 누구에게도 특정한 충성심이 없는 떠돌이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으로 이해했다. 그 순간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과연 나의 충성심은 어디를 향한 것일까?"

한국의 정치 논쟁 특히 대다수 종편방송에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치 주제에 대한 논쟁 중 당을 대표하는 인사들이나 심지어 다소 중립적인 정치 논객들(대부분 정파에 속한 사람보다 객관적이지만)이 출연해서 하는 말들은 너무 세세한 비판에 치중한 나머지 국가의 미래 목표를 희미하게 만드는 역작용의 경우가 많다. 영미의 최고 지성인들마저 투쟁적 특수주의 문제로 고민하는데, 과연 우리의 정파 혹은 정치 논객들은 사회정의라는 너무 추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이 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한번 다시 우리의 물음이 특수(특정 집단, 계급)에서 출발한 보편(공동선의 추구)인지, 아니면 추상적 보편(공정한 사회)에 맞추는 특수(사회적 약자 혹은 강자 집단)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비의 경험은 이와는 또 달랐다.

저자는 이 경험에서 단기적 행동을 장기적 몽상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긴급상황이 아주 다른 뭔가를 요구할 때 장기적 궤적에서 움직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생하는 국가적 재난이나 사건의 처리는 장기적으로 계획이 불가능할 정도로 임시처방에 불가한 경우가 많다. 저자는 당시 옥스퍼드의 자동차공장의 문제를 영국 나아가 전유럽에서 나타나는 자동차산업분야의 엄청난 과잉생산능력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그는 최소한 유럽 차원에서 자동차 생산능력을 조정하자고 주장했지만, 그 정도 규모에서 그쳐야 할 정당한 이유는 막상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총체적 사회전환에 관한 예측모델을 공장에서 도출해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확장해나가고자 하는 정치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믿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다시 그는 영국의 문화사회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1988)를 사로잡았던 질문들에 대하여 쓴 그의 책과 글을 인용한다. 저자는 윌리엄스의 '문화전체론(cultural holism: 문화는 전체 생활양식으로 이해해야 하며 사회적 실천은 지속적인 물질적 사회과정의 분해 불가능한 요소들로 구성된다는 견해)'로 나아갈수록 외부자들에게 배타적이며 심지어 내부자에게도 어떤 점에서는 억압적인 유기체주의적 견해에 가까워진다는 비판에 동의한다. 문화전체론은 마치 오늘날 트럼프의 MAGA 정책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유사하기도 하다.

윌리엄스는 마지막 미완성 소설인 한국어로는 아직 번역이 안된 일종의 환경사로서 소설 [블랙마운틴 사람들, The People of the Black Mountains: 구석기시대부터 중세까지 이어지며 ,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웨일스 국경 지역인 블랙마운틴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허구화된 단편 소설들의 연작]의 1-2권의 서두를 소개한다. "여러분의 손가락으로 이 이끼가 낀 사암을 꾹 눌러보라. 이 장소는 이 돌과 풀, 이 붉은 흙과 더불어 물려받았고, 또한 이들과 더불어 형성되고 재형성된다. 이 장소의 생성은 독특하지만 아주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왜 영국의 저명한 사회주의적 사상가인 그는 가장 마지막 픽션에서 블랙마운틴의 사회사와 환경사를 서술하고자 했을까? 저자가 발견한 부분적 답은 '사회적 존재는 자연세계에 그들의 뿌리내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정치적 행동에 대한 어떤 개념화도 종국의 분석에서는 이 사실을 포함하지 않은 추상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결론으로 가보자. 저자는 투쟁적 특수주의들이 영국 노동당이 다양한 역사적 순간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함께 모여서 국가적 운동이 될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떤 종류의 억압적이고 무정한 산업 질서 하에서 달성된 유형의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연대와 충섬심의 지속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소유권은 변할 수 있지만 광산과 조립라인은 내내 가동되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로버 자동차의 사례처럼 소유와 상표는 인도와 중국에게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랜드로버와 레인지로버는 영국의 솔리헐 공장과 인도의 푸네 공장을 포함한 여러 재규어 랜드로버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모든 지리학자들이 봉착하는 이론적 문제는 공간, 장소, 환경이라는 세 가지 주제들을, 그 차이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그것들의 통합성을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저자는 이 모순적 통합성을 위하여 자신의 저서 [자본의 17가지 모순]이란 책에 기술했다고 말한다.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국어 번역본을 읽어보고 다만 저자가 유연한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항상 마르크스의 [자본]에 근거하여 자본주의 모순을 본다는 시각의 한계도 유념하기 바란다. 그러나 그가 소개한 윌리엄스의 유작 소설이 빨리 한국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런 환경사로서 소설 작가가 한국에서도 배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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