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
일 년 만에 다시 하는 전신 마취는 잠시나마 모든 불면증 환자에게 ‘죽음보다 깊은 잠’에 대한 동경을 체험하게 하는 순간이다. 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의식의 마디마디, 보다 생리학적으로 표현하면 신경계의 신호를 연결하는 뉴런들을 차단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뇌 안의 섬광은 뇌라는 각성 체계(覺醒體系)가 가진 저항의 일부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섬광을 정원의 벚나무에서 피어난 벚꽃, 그 가지에서 흩날리는 벚꽃의 공간적인 연속으로 인지하였을까? 여전히 정맥에 바늘을 꼽은 채 CT실로 이동하며 실감한 것은 벚꽃에 대한 과도적 집착이었다.
처음 정원에 심었던 두 그루의 벚꽃나무가 겪었던 고난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은 종이나 유적인 차이만 있을 것이다. 나무의 송진은 포유류의 피가 흐르듯 새어 나온다. 피의 결론은 잔혹하고 두려운 것이지만 송진의 결과는 아름다운 것이다.
어차피 식물 생명이 동물 생명보다 더 분명하다면 우리가 식물은 동물이 할 수 없었던 어떤 불변적 변형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식물 생명의 보석 화이다. 인간은 가치가 있는 물질을 소유하고자 한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불변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많은 물질 중에서도 보석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 가치가 오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로 인한 보석은 무척 드물다. 그래서 식물성 보석을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소나무의 송진은 호박이라는 보석으로 변한다. 그러나 어떤 보석도 피를 포함하지 않는다. 인류는 피의 솟구침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소나무에서 솟아난 송진은 보석으로 승화된다.
되돌아보면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피를 내재한 붉은빛이 내재한 엷고 투명한 분홍빛을 좋아했다. 뒷산에 피어난 복숭아나무의 복사꽃을 좋아했고, 시집가는 사촌 누이의 발그레한 뺨을 좋아했고, 언젠가부터 본 터진 석류 속의 많은 분홍빛 치아들을 사랑했다.
다이아몬드도 투명색도 있고 블루 다이아몬드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는 레드 다이아몬드라고 한다. 왜 사람들은 붉은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다이아를 가장 귀하게 취급했을까? 그러나 이것은 너무 화려하다. 차라리 나에게 레드와 핑크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핑크 다이아몬드를 가질 것이다.
분홍은 인간의 원초적 살결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난 원초적 빛은 아마 흰 종류이지만 가장 접촉이 많은 어린 시절의 색깔은 바로 분홍이다. 이 분홍빛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벚꽃이다. 벚꽃은 노골적인 분홍이 아니라 흰 빛이 반사되는 은은한 분홍이다. 그러나 이 분홍 꽃잎들은 너무나 빨리 져버린다. 우리의 청춘이나 인생처럼.
마취에서 깨어나자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것은 간호사들에게 나의 정원의 벚꽃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아마 당신들을 보니 봄날 나의 정원에 핀, 내가 그토록 집착하던 두 벚꽃나무에 핀 그렇게 시리고 아픈, 한편으로 떠나보내야만 하는 그 꽃잎들이 생각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