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
자연의 조화는 흉내 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성숙의 시간 때문이다. 물리적 시간은 시간-기계 즉 시계의 시침으로 지나가지만 근원적 시간은 자연-시간 그 자체로 성숙(時熟)한다. 그러므로 자연 안에서 대부분 생명체의 성숙은 근원적 시간에 속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각 식물 군락에는 태양빛에 맞추어서 성숙하는 녀석들도 있고, 달빛에 적응하여 성장을 꾀하는 것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달맞이꽃이 달의 기운이 충실해지는 시점에 만개할까? 식물이 광합성을 사랑한다면, 모든 꽃도 해가 뜨는 시기에 사랑을 해야 한다. 반대로 달맞이꽃은 말 그대로 밤에 펴서 아침에 진다.
나는 노란 달맞이꽃을 정원에 들이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햇빛이라는 모든 화초의 대세적이고, 일반적 리듬을 따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면의 밤이 깊어지기 때문이었다. 모든 불면의 근원은 어떤 향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향기로 변화된 슬픔이란 정보는 후각 세포를 타고 뉴런으로 올라가 특정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시킨다. 대부분의 식물 향은 머리를 맑게 한다. 커피처럼. 카페인은 노동을 위한 물질이지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예외적인 허브도 있다. 라벤더이다. 나는 머리맡에 라벤더 화분을 두고 잔다. 침실 밖에 있는 화단은 소위 말하는 허브 화단이다. 로즈메리, 라벤더, 레몬 타임, 핫립 세이지, 데이지 등으로 간단하게 꾸며 놓았다.
요리 재료로 쓰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라벤더를 사랑해서이다. 고대의 제왕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연인이나 그녀의 남편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그들을 전장으로 보내었다. 이들이 죽으면 자연스럽게 과부가 된 연인을 후궁으로 맞이한 것이다.
나의 라벤더 사랑은 다른 허브를 제거함이 아니라 나의 불면증을 드러내지 않게 함이다. 소심한 나는 불면증을 드러내지 않게 허브 화단을 조성하고 그중 일부만 라벤더를 심었다. 사실 이러한 소심증이 불면의 원인이다.
라벤더가 불면의 치료제라면 왜 스위스 제약회사에서 수면제의 원료로 쓰지 않았을까? 일시적인 일탈(逸脫)이 권태의 치료제라면 왜 대부분의 사회에서 일탈을 권장을 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아마 다국적 제약 기업이라는 건강-시장을 장악한 세계적 권력 집단의 통제일 수도 있고, 호모 사피엔스가 농경 사회의 성공 이후 사회적 통합을 훌륭하게 이룩하게 했던 슈퍼-에고 즉 도덕-법 때문일 수도 있다.
비교적 음지인 담장 쪽으로 심긴 신선초와 방풍나물은 내 뇌의 리듬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심긴 것들이었다. 아내 가계의 지병은 주로 혈관 계통이었다. 신선초는 게르마늄이라는 생소하지만 신비한 원소를 그리고 방풍은 한방적으로 풍, 즉 혈관 계통의 질환을 예방한다고 알려진 식물이었다.
전공했더라면 크게 성공했을 것만 같은 아마추어 영양학자인 아내는 꽃보다는 약초를 사랑했다. 그래서 아내는 나보다 항상 강하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남자는 여자의 집사이다. 나의 정원에서 점점 깨달아가는 괴로운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