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신화는 적절하게도 성공적인 인간 존재의 본질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고 이 방대한 종교 철학 자료를 주의 깊게 비교 분석한다면, 인간의 동기와 도덕의 본질을 잠정적으로나마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신화의 공통적인 근원을 규명하는 일은, 진정한 인류 보편의 도덕체계를 만드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엄격한 실증연구를 바탕으로 삼는 심리학에 근거하여 여러 신화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은 하나의 수렴적인 검증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이상과 현실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신화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단순히 세계 무대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논의하거나 원시 신앙을 살펴보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의미 체계를 검토하고 분석하여 통합해야 하는데, 이 의미 체계에는 경험의 가치가 위계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신화는 객관적 세계를 설명하는 과학자의 관점이 아니라 주관적 현실의 본질을 밝히는 현상학자의 관점을 취한다.
그렇다면 신화에서 얻게 되는 정보는 “현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그렇게 바뀌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도덕 문제에 관한 해답일 것이다. (57-59쪽)
문명 전후시대부터 구전이던 문자이던 신화와 예술, 종교와 철학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문자 이전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는 주술의 형태로 표현된 예술이고, 거기에 신화적 스토리와 종교적 제의가 추가되어 의미의 지도를 형성했다.
비교적 늦게 등장한 철학은 이념의 질서로 가치를 분류하고 보다 명확하게 도덕과 윤리 체계를 구조화하였다. 고대인들은 이렇게 형성된 상부 이데올로기에 따라 위계질서화된 사회조작과 체계에 순응하였다.
문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 후 근현개인들에게 닥친 부정적/긍정적 허무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들뢰즈가 지적하듯이 ‘허무는 비존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무가치를 의미한다.’
기존의 가치질서가 전복되거나 파괴될 때 인간은 행동의 지침을 상실하게 된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 문제를 유발한다. 왜냐하면 행동의 옛 이정표가 그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가치는 지금 떠나려는 장소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현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즉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하위 질문이 포함된다.
1. 현실은 어떠한가? : 우리가 경험하는 현 상태에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2. 현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목표는 무엇인가?
3.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 현 상태를 이상적인 상태로 바꾸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현재 상태를 진단하고 그것을 기초로 행동의 목표를 명확히 세우면 현재 행동의 결과를 평가하는 확실한 기준이 생긴다. 이때 목표는 머릿속에 떠올린 가상의 상태이며, 바람직한 동기나 정서가 존재하는 '장소'이다.
완벽한 미래상이란 신화적 용어로 풀이하자면 '약속의 땅'으로, 일종의 영적(심리적 상태가 될 수도 있고 정치적 유토피아(국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이 둘을 동시에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이상적 미래상을 그려야 한다. 이상적 미래상은 현 상태에 대한 해석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현실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현 상태가 정서적으로 수용할 만한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려면, 현실을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로 바꾸기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이 무엇인지가 결정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은 사회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수정된다. 그리고 그 답이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한 그것은 신화적 관점에서 우리 지식의 일부가 된다.
신화의 지식 구조는 "현실은 어떠한가?", "현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이루어져 있다.(59-61쪽)
고대 신화나 종교에서 현대 철학이나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현실 변혁을 위한 목표나 이상을 설정하고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완벽한 미래상으로 여기는 것을 소위 칼 포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다.
물론 포퍼는 이 공학이 빠지게 되는 전체주의적 위험에 대항하기 위해 ‘점진적 사회공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유토피아 공학은 현실의 혁명적 변화를 위한 폭력적 위험을 동반하는데, 실제로 역사상 이런 사회공학적 시도는 엄청난 살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포퍼는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통한 부분적 현실 변혁만이 사회공학적 오류를 줄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이상사회 즉 복지국가의 이념이나 기회균등의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정당도 유토피아 공학을 완전히 배제할 수은 없다.
피터슨은 고대 신화나 종교 그리고 철학에 제시된 이상에의 탐색과 모험, 예를 들면 고향과 이향 그리고 귀향과 같은 서사적 구조로부터 이 시대에 적합한 의미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문학평론가 노스럽 프라이가 제시한 ‘길(way)’의 개념을 획기적 변화를 제시하는 신화적 사고 안에 내재한 공통적 구조로 이해한다. 길은 여행 혹은 여정과 관련된다. 길과 여정의 메타포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의 지도를 형성하는가? 자!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