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 읽기 1-9:의미의 지도 9

존재의 가벼움과 불확실성

by 박종규

고대 문명이 애초에 터무니없는 사상을 기반으로 일어났다면 어떻게 그토록 세련되고 찬란한 문명으로 번성할 수 있었을까?


문화가 살아남고 발전한다는 말은 그 밑바탕이 된 사상이 타당하다는 말이 아닐까? 신화가 미신적이며 원시적인 이론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효과적이었을까? 어째서 살아남은 걸까?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같은 순수 이성주의자들의 이념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었음에도 몇 세대 만에 본질적으로 무용함을 드러냈다.


종교적 사상에 바탕을 둔 전통 사회들은 경우에 따라 수만 년간 그 본질이 변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 살아남은 전통을 그 유용성을 무시한 채 그저 잘못된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게 과연 합리적일까?


어쩌면 그것이 겉보기에 너무나 비합리적이라서, 왜 옳은지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는 현대 철학의 오류가 아니라 현대 철학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48쪽)

사무엘 헌팅턴은 20세기말 ‘문명의 충돌’이란 저서에서 21세기에 벌어질 지구촌의 갈등을 자원이나 시장의 경쟁에 기인하기보다는 문명권이 가진 가치관의 갈등이 더 근본적이라는 예측을 했다.


세계를 9개 문명권으로 분류하는데 그 분류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서구는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동구는 정교로, 중화는 유교 문명권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각 문명 안에는 지속적 가치관이 존립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중화 즉 유교문명권에 속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 내의 종교 분포는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가 각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일반적인 사회 규범을 행사하는 것은 유교적 가치관이다.


임의의 집단이 식당에 갔을 때 가장 먼저 우대시받는 사람은 주로 먼저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특별한 조직이 아니고는 대체로 삼강오륜이라는 가치질서가 사회적 통념을 이루고 있다. 비록 형식적이지만.

우리는 조상들이 설명하는 '영적 세계'란 현대의 '물질세계'를 원시적으로 개념화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적어도 현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신화 속 우주는 현대 과학의 우주와 같은 곳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실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직 우리 위에 있는 신도, 우리 아래에 있는 악마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위'와 '아래'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조들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선조들 역시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대상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선조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역사의 발상지인 고대 수메르의 창조 신화를 살펴보자.


이 신화를 보면 고대인들이 세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세계는 원초적 바다에서 출현했고, 그 바다는 만물의 어머니이며, 하늘과 땅이 신의 행위로 갈라졌다. 이런 믿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로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있어 한없이 무지함에도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이런 신화적 이야기들이 과학적 설명보다 방법론적으로 열등할 뿐 그 기능과 의도는 같은 것이라고 넘겨짚는다. 이런 터무니없는 추측으로 인해 현대인의 도덕 추론과 행동 체계에 종교적 전통이 미치는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수메르인의 신화적 세계는 현대인의 객관적 현실 세계가 아니다. 그 세계는 객관적 현실 세계 이상이자 이하이다. 객관적 현실 이상이라 함은, 고대의 원시 세계가 우리가 더는 현실의 일부로 취급하지 않는 정서나 의미 같은 현상을 포함한다는 측면에서이다. 한편 객관적 현실 이하라 함은, 수메르인들은 창조 과정에 관해 현대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이다.


신화는 고대의 원시 과학이 아니다. 신화는 과학과 질적으로 다르다. 과학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특성'이나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거기에 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설명한다. 반면 신화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의미 차원의 세계'를 설명한다. 신화가 그린 세계는 '인식의 장'이 아니라 '행동의 장'이다.(49-50쪽)

신화가 단지 유아기적 인류의 원시적 세계관이라는 실증주의적 사고는 일종의 편견이자 무지였다는 사실이 융이나 레비스트로스나 캠벨, 엘리아데와 같은 신화학자들에 의해 드러났다.


그들은 고대의 신화가 인간 행위의 원형적 패턴과 구조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생각들은 21세기에서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화적인 상징은 해석학적 과정을 통해 역사로 그리고 실존(실재)으로 이해된다. 하나의 상징적 신념체계였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의 대홍수 이야기는 히브리인의 구약에서는 노아의 방주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로 해석된다.


각 문명권에서 신화는 이렇게 종교적 믿음으로 변형되어서 가치 질서를 형성한다. 예를 들면 단군신화는 천도교에서 홍익인간이란 이념을 창출한 한민족의 우수성과 현대 한국의 새로운 부흥에 대한 믿음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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