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그러나
이론의 전제가 거짓으로 드러나면 이론 전체가 폐기된다고 니체는 말했다. 하지만 기독교 도덕관은 여전히 평범한 서구인의 가치 체계를 지배하고 있다. 무신론자, 식자층이든, 인습 파괴자든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평범한 서구인은 살인하거나 도둑질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그 사실을 타인에게 때로는 자기 스스로에게도 숨기려 들 것이다. 또 실천하지는 못할지언정 원론적으로는 이웃을 자신과 똑같이 대하려 할 것이다.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원칙들은 여전히 개인의 가치 즉 개인의 고유한 권리와 대한 신화적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범죄 피해자들은 설령 자신도 가끔 죄를 저지른다 할지라도, 마음속으로는 하늘을 향해 '정의'를 구현해 달라고 외치며 법을 의도적으로 어겼다면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현대의 실증적 사고 체계와 신화적 정서 및 행동 체계는 역설적이지만 공존하고 있다. 전자는 신식이고 후자는 구식이다. 전자는 과학적이지만 후자는 전통적이며 미신적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말로는 무신론자가 됐지만 성향은 명백히 종교적이며 '도덕적'이다. 현대인이 진실이라고 믿는 신념과 행동하는 방식은 더 이상 합치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여전히 자신의 경험에 초월적 가치(의미)가 있다는 듯 행동하지만, 이러한 믿음을 합리적으로 정당화하지는 못한 다.
추상적 사고 능력이 스스로를 얽어매는 올무가 된 셈이다. 추상적 사고 능력 덕분에 현대인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얻었지만, 그 대신 자기 존재의 의미와 유용성에 대한 신념을 잃었다. 이 문제는 종종 비극으로 여겨졌고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에서 철저하게 다뤄졌다. 니체는 이런 현시대의 문제를 '신이 죽었기‘ 때문에 생긴 필연적 결과로 보았다. (45-46쪽)
니체와 함께 실존주의 사상의 또 다른 근원인 키에르케코르는 근대 과학이 또 다른 객관성의 신화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진리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것이다.
실존주의 사상의 탄생은 근대의 합리주의 정신에 대한 실망 내지 절망에서 시작된다. 서구의 합리적이고 객관주의적인 정신은 근대문명을 세계로 보편화하였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근대화는 지극히 야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즉 제국주의로 발전하였으며, 열강들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을 시작했다. 그 결과가 1,2차 세계대전이었다. 근대적 이성은 계몽적 이성이자 동시에 야만적 충동이었다.
과학적 세계관은 쉽게 신화적 표상을 제거하지 못했다. 과학은 또 다른 객관성의 신화가 되었고 그 세계 속에서 인간 고유의 주체성은 말살되었다. 대중사회가 등장하면서 근대인들은 급속히 획일화, 평균화, 표준화되었다.
현대의 우리들은 부조리하고 불운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인생에 내재적이고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처럼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모순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실험이라는 위대한 방법론을 무기 삼아 득세한 경험주의와 이성주의는 신화를 죽였고, 신화는 부활할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선조들의 계율을 실천한다.
"살인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같이, 수천 년간 경험적 사고의 혜택 없이 살아온 선조들을 이끌었던 바로 그 신화적 규범이 여전히 우리의 행동을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 규범은 영향력이 너무나 크고, 적어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 타당성을 떨어뜨리는 이론 앞에서도 유지되고 확장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하지만 불가사의한 일은 더 있다.(47쪽)
문학에서는 까뮈와 카프카가 그리고 희곡에서는 베케트가 근대인의 부조리한 삶을 신날하게 묘사했다. 까뮈는 ‘이유 없는 살인’을, 카프카는 ‘괴물로 갑자기 변신한 인간’을, 베케트는 ‘고도우란 미지의 존재를 무작정 기다리는 인간’을 통해 근대적 문명의 배후에 있는 부조리를 폭로했다.
피터슨이 말하듯이 대부분의 현대인도 한편으로는 양자역학이 만들어낸 진보된 문명 속에 살면서 우주 그 어디에도 생명체의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다른 한편 고대의 신화적 세계관 아래 형성된 가치와 규범의 대부분을 수용한다.
특별히 이것은 제정분리 즉 종교와 정치가 완전하게 분리가 안된 문명권에서 더 극단적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무신론자보다 유신론자가, 허무주의자보다 내세주의자의 행복지수가 더 높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부탄의 국민들이 그리고 중미의 가톨릭 신자 집단이 느끼는 삶의 질은 서구의 최상류 층이 가지는 그것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한계효용의 법칙은 행복체감의 법칙으로도 환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