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 읽기 1-6:의미의 지도 6

경험의 지도: 사물과 의미에 대하여

by 박종규

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 사항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무엇이 있는가.’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과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아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사물을 '탐색 explore '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한다는 말은, 가장 중요하게는 그 사물이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낸다는 뜻이다.


세부적으로는 사물의 감각적, 물질적 특성을 정밀하고 객관적으로 밝혀낸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지식으로, 대개는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대상의 의미, 특히 어떤 대상 근처에서 실제로 탐색한 결과로 밝혀진 의미는 자연스럽게 대상 자체에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그 대상의 존재가 근접 원인 혹은 자극으로 작용하여 지금의 행동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대상의 의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대상의 한 부분으로서, 그 대상이 부리는 마법과 다름없다.


이 마법은 대상의 객관적인 감각 특성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심리적으로 결정된 대상의 의미로 인해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무서운 사람을 보았어요."라고 말한다면 누구나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가 인식한 대상의 특성은 맥락 의존적이고 주관적이지만, 대상에 대한 설명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이다. 하지만 두려움이나 위협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감정과 인식이라는 점을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34-36쪽)

사물의 의미 혹은 사물의 명칭을 결정하는 것은 사물 자체의 속성인가? 아니면 사회적 약속/협의에 의한 것인가? 언어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플라톤의 ‘클라튈로스’ 편에서부터 시작된 물음이기도 하다.


상형문자는 자연주의적 언어관을, 음성문자는 협약주의적 언어관을 지지할 수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명칭을 넘어서 의미의 문제에 도달하면 그것은 반드시 사회적 맥락과 관계된다.


즉 언어란 우리가 사물의 의미를 전달하거나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회적 맥락의 토대인 문화와 관계가 있다. ‘이것은 돌이다’라는 문장과 ‘너의 머리는 돌이다’라는 문장에서 돌의 의미는 각기 다르게 사용된다.


언어철학에서는 언어의 의미를 지시설과 관념설 그리고 용도설로 구분하는데, 현대는 용도설이 주류를 이룬다. 즉 언어의 의미는 그것의 사회적 쓰임새를 통해 문화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상의 의미를 대상의 속성으로 보는 것 혹은 애초에 대상과 의미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이야기와 신화의 특성이다.


이야기는 경험의 본질을 날것 그대로 정확히 잡아낸다. 뭔가가 무섭다. 누군가가 짜증 난다. 사건의 조짐이 좋다. 음식이 맛있다. 같은 것 말이다. 적어도 기본적인 경험 차원에서는 그렇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이런 마술적 사고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비합리적'인 감정적 반응을 할 때가 많다. 좌절감과 분노, 집념과 욕망을 그 감정의 근접적인 원인이 된 사람이나 상황 탓으로 돌리는 건 경험의 마법에 빠지는 것이다.


제아무리 냉철한 순간이라도 우리는 '객관적이지 않다(그리고 그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또 영화나 소설에 대해서는 기꺼이 의심을 내버리고 빠져든다.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거나 움츠러든다. 여기에는 유명 지식인이나 스포츠 스타, 영화배우, 정치 지도자, 교황, 이름난 미인, 직장 상사는 물론이고, 우리를 혼돈으로부터 보호하는 내재적 가치와 이상을 구현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포함될 수 있다.


또한 그 인물이 곁에 있지 않아도 그의 상징만으로도 영향을 받는다. 마치 중세인들처럼 말이다. 지금도 유명인이 걸쳤거나 만들거나 사용한 물건을 손에 넣으려고 기꺼이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실증주의가 태동하기 이전, '자연스러운' 신화적 세계관 속에서 살던 사람들은 대상의 객관적 특성이 아니라 대상의 의미, 즉 대상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신화적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현대의 과학적 사고로 개념화한 대상의 형식은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모두 빠져나가고 남은 무의미한 껍데기일 뿐이다.


실증주의 이전 시대에는 대상을 주관적으로, 즉 정서나 감정로 경험했기 때문에 대상의 감각적 특성에 깃든 '의미'를 중심으로 인식했다. 사실 실생활에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안다는 것은 대상 구체적인 감각적 특성과 더불어 그 대상이 정서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안다는 의미이다. 이를 동기적 관련성 motivational relevance이라고 한다.(37-38쪽)

세계를 사물과 행동의 장으로 구분하여 보는 것은 근대 과학 이후의 세계관이다. 인지혁명 이후 수십만 년 인간을 지배해 온 것은 신화적 표상이었다. 그리고 그 표상은 주로 서사 즉 이야기로 전승되었다.


세대 간에 걸쳐 구전으로 전승된 이야기 속에서 이 신화적 표상은 의미와 행동을 마법처럼 연관시켰으며, 특별히 언어의 의미와 사물의 속성은 기원신화와 영웅신화의 형식으로 전승되었다.


아직도 이런 일을 반복되고 있는데 지금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자기 전에 동화나 우화라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장차 아이들이 접할 세상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의미의 지도를 보여준다.

인간이 그 자체로는 즉각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상에 주목하고, 대상의 '감각적 특성'과 '동기적 관련성'을 구별하기까지는 수세기에 걸쳐 종교와 원시 과학, 과학 분야에서 지적 전통의 발전과 훈련이 필요했다.


이 사실은 어쩌면 신화가 과학 분야에서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니며, 지금껏 인류의 진보에 기여해 왔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실증주의가 태동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사고했을까? 사물은 객관적 사물이기 이전에 무엇이었을까? 이는 대답하기 무척 어렵다.


실증 과학 이전 시대의 '사물'은 현대인의 관점에는 사물 그 자체로도, 사물의 의미 측면에서도 유효하지 않다. 한 가지 예로 '태양‘을 이루는 물질의 본질에 관한 의문은 실증주의 이전 시대의 '과학자'인 연금술사들의 마음을 수백 년간 사로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태양이 거기에만 존재하는 균일한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믿지 않는다. 연구 인생 막바지를 중세인의 사고방식을 연구하는 데 바친 칼 융은 태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태양은 우선 순금을 의미하며, 연금술에서는 태양과 순금이 같은 기호로 표시된다. 하지만 철학에서 말하는 금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금이 아니듯이 태양은 단순히 금속으로서의 금도 하늘에 떠 있는 구체도 아니다.


금이면서 동시에 천체이기도 한 태양은 붉은빛을 띠고 뜨겁고 건조한 성질을 지닌 활성 황을 함유하고 있다. 연금술에서는 이 붉은 황 때문에 태양이 금처럼 붉은빛을 띤다고 본다.


연금술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금이 붉은빛을 띠는 이유는 구리가 섞여 있기 때문이며, 구리는 키프리스(비너스)로 해석되고 그리스 연금술에서는 변형물로 언급되기도 했다. 붉고 뜨겁고 건조한 성질은 이집트 신화 속 어둠의 신 세트(그리스 신화의 티폰)의 전형적 특징이며 그 악한 성질은 연금술에서의 황과 마찬가지로 악마와 관련이 깊다.


티폰이 그의 왕국을 금단의 바다에 세웠듯이 태양도 그 중심이 바다에 있는데, 거기엔 대략 감지할 수 있는 물'과 '감지하기 어려운 물'이 있다. 이 바닷물은 해와 달에서 추출된다. “


이 설명은 중세 특유의 상상적, 신화적 연상들이 얽혀 있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런 환상성 때문에 연금술에 관한 문헌은 살펴볼 만하다. 구시대의 사상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과학사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주관적 해석 도식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말이다.


연금술사는 사물 그 자체와 사물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 가정은 추측에 바탕을 둔 문화적 '해설'을 아무 의심이나 인식 없이 수용한 결과이며,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사물이 정서, 감정 혹은 동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사물은 관련성 혹은 가치, 다시 말해 정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분류됐다. 대상의 관련성은 서사와 신화의 형식으로 설명됐다.


융이 제시한 예에서 처럼 태양에서 황과 같은 물질적 측면은 부정적이며 포악한 특징을 나타낸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감정'을 배제하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자신의 경험을 공통의 이해에 바탕한 객관적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은 분명 '실재' 한다.(39-41쪽)

현대 우주물리화학에서는 금이 지구 내부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중성자별의 충돌 혹은 초신성으로 인해 외부에서 유입된 원소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사물의 질서를 설명하는 과학적 방식이다.


융과 피터슨은 금이라는 물질에 대한 심리학적 감정과의 연관성을 이해하려 한다. 그들은 중세적 사고의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의 질서를 심리학적으로 탐구한다. 즉, 구리가 섞인 금을 악마적 의미로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신화적 서사에서 물질이 가진 사물적 특성이 무시되고 문화적이고 정서적 맥락만이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금이 가진 물질적 속성인 영구성은 신성의 영원성 혹은 권력의 절대성을 상징하며 대변한다.


말과 사물은 푸코가 말하듯이 상대적 연관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물의 사물다움이 언어를 통해서 더욱더 드러난다. 예를 들어 보석이 아름다운 것은 어떤 광물이 압축과 연단 그리고 세공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사물의 언어화도 이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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