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사라진 시대
연금술사들은 감정과 감각을 구분하지 않았고, 경험에서 느낀 감정을 당연시했다. 우리는 사물에서 감정을 배제했고, 그 결과 사물을 놀라우리만큼 조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물에 의해 생겨난 더 정확히는 사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우리는 실증과학 이전의 신화적 세계를 잃었다.
적어도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무의식 차원에 남아 있는 가치 체계로 오늘날의 뛰어난 기술력을 제어해야 하는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데카르트와 베이컨, 뉴턴이 등장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의미가 풍부하고 도덕적 목적의식에 고취된, 영적으로 활기찬 세계에 살았다. 도덕적 목적의식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우주의 구조와 그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려 주는 이야기 속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과학적 사고방식을 따르면서 한때 이 세계에 존재했던 영적 존재들은 사라져 버렸다. 실험이 등장하면서 신화적 세계는 사정없이 파괴되었다. (41-42쪽)
피터슨은 근대 이전 고중세인의 우주론과 가치관을 신화론적 세계관으로 일반화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단순한 구분의 배경에는 융의 심리학이 있지만 실제로 근대의 실증주의 이전을 신화의 시대로 단정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나 중세의 종교나 철학의 배후에 신화적 표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현대의 신학자 불트만이 기독교 신앙을 시대에 맞게 탈신화화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도 이런 시대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물론 현대에도 고대적 세계관 혹은 중세적 가치관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이슬람문화권이나 힌두교 문화권 또는 라틴 문화권에도 수많은 일반인들이 전통적 신념체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가장 현대화된 구미권에도 고중세의 신화와 다른 또 다른 신화 즉 대중문화 속에 넘치는 것이 바로 신화가 된 비틀스, 마이클 잭슨의 음악, 이미 전설이 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등 수도 없이 많다. 물론 과거의 신화와 다른 의미이지만.
중세 사람들 모두가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누리진 않았을 터이다. 머릿속이 지옥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 없었을까? 그렇다 해도 이들은 적어도 현대의 우리들처럼 과도한 의심과 도덕적 불확실성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증주의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게 종교는 믿을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자체였다. 종교관이 사회를 지배했다. 그저 여러 이론 중에서 두드러진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몇 세기 동안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적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이런 현상은 서구에서 시작되어 세계 전역으로 퍼졌다. 위대한 과학자와 인습 파괴자들은 우주가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거나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 하늘에는 신이 없다는 것, 눈에 보이는 하늘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만들어 낸 이야기들을 믿지 못하게 됐다. 그 이야기들이 과거 인류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말이다. 갈릴레오가 발견한 달 표면에 있는 산들이나 케플러가 발견한 행성의 타원 궤도처럼, 과학계의 굵직한 발견들은 천상의 완벽성을 증명하는 신화적 질서를 명백히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다.
과학이 밝혀낸 새로운 현상들은 신화의 관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증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들이 생겨났지만, 이것들 역시 그동안 세계에 확실한 의미를 부여해 주던 전통적 현실 모형의 완결성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신화 속 우주에서는 사람이 우주의 중심에 있었다. 객관적 우주에서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을 차지했다가, 나중에는 태양마저도 우주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인간은 더 이상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가 사는 세계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고 말았다.
과학적 세계관은 신화적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우리가 신화라는 편리한 환상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자 그에 근거한 도덕률 역시 함께 사라졌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100년도 더 전에 이 문제를 명확히 짚었다.(43-44쪽)
수백만 년간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신피질 영역에서는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적 이미지들이 응축되고 전이되면서 인지혁명을 거쳐 고대인들의 씨족과 부족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신화적 이야기로 발전했다.
사냥을 하고 동굴 속에서 살던 크로마뇽인에게는 회화적 서사로 표현되던 사실적 자연 경험이 신석기시대를 거치면서 추상적안 영성 경험으로 응축되었다. 중요한 것은 언어의 역사 이전에 그림의 역사도 일종의 스토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본격적 신화의 문자적 이야기로의 구성은 고대 국가의 제사장 계층과 서기관 그룹에서 시작되었는데 늘 말하지만 이는 노동의 분업이나 계층의 분화와도 관계가 있다.
이들이 구성한 신화적 표상체계는 2500년경에는 형이상학적 관념체계로 전이되었고, 서양 중세에서는 신학적 영성체계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이 체계들은 배후 세계의 믿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기독교의 신뿐만 아니라 구 시대의 가치관의 근거가 되는 이 모든 것의 상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