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메타포
이야기를 따라가는 행위는 문학에서 흔히 메타포로 활용되는 길 떠나는 행위와 비슷하다. 이야기 속에는 가야 할 길과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서 여정을 떠나는 사람이 등장한다.
여정이라는 메타포를 단순하게 확장하면 이 하루의 순환은 인생 전체를 상징하게 된다. ‘길'이라는 단어는 언어가 메타포적 비유를 겹겹이 쌓아 가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성경에서 '길'은 보통 히브리어 '데렉 derek'과 그리스어 '호도스 chodos'의 번역어인데, 성경은 시종일관 우리를 목적지로 이끄는 곧은길과 우리를 호도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굽은 길을 매우 강조해서 대비한다.
곧은길과 굽은 길이라는 메타포는 기독교 문학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단테의 『신곡』을 읽다 보면 세 번째 줄에 잃어버린 혹은 잊힌 길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나는 올바른 길을 잃었네."
길이라는 메타포는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불교에서는 흔히 ’ 팔정도(八正道)로 불리는 덕목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도(道) 역시 여러 사람이 영어 ‘길 way'로 번역했는데, 나는 이 단어가 '향하여 가다 head-going'를 의미하며, 급진성을 대표한다고 본다.
도교 경전인 『도덕경』은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메타포적 언어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인데, 동양에서 흔히 쓰는 경구로 표현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달을 혼동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지만 도덕경』을 계속 읽어 내려가면, 결국 '도' 역시 어느 정도는 특징지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도교에서 말하는 길은 구체적으로 '계곡 길'이며, 겸손과 몰아, 모든 행위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일종의 휴식 상태, 즉 무위를 향해 가는 길이다.
'길'은 인생의 여정이며 목적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길의 내용은 우리가 걸어온 인생의 구체적인 여정을 말한다. 반면 길의 형식은 어떤 중심 사상을 받아들이고 따르려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말한다. 이런 본성 때문에 우리는 저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답을 찾는다.(63-64쪽)
당신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가 던지는 자기 정체성에 관한 근본 물음이다. 물론 감성적 직관으로 보면 두 가지 길이 먼저 보인다. 나는 부모로부터 나와서 무덤으로 간다. 동시에 조상으로부터 와서 후손으로 간다.
하지만 이런 직관적 현실이 내 인생에 어떤 존재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부모도 자식도 나에게는 타자이다.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죽어줄 수도 없다. 이 냉엄한 현실 앞에 인간은 근원적 의미의 길을 추구한다.
기원신화는 자기의식으로 갖기 시작한 이후 몇백만 년 동안 아니면 호모 일렉투스 이후 백만 년간 자기 인생의 의미를 모색한 원인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안된 혹은 발견된 길의 메타포로 구성된 서사이다.
이 서사적 이야기들이 인지혁명 이후 발명된 문자를 통해 신전에서 종사하던 신관들에 의해 종교적 제의를 위한 찬가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시작이다.
기원 신화로 시작된 문학의 위대한 힘은 바로 서술이었다. 즉 스토리이다. 스토리는 여러 사건을 서사적으로 연결하면서 우주의 기원 나아가 인생의 근원과 끝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여 주었다. 동시에 그것은 사랑과 경이, 믿음과 같은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감정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였다.
이 길의 중심 사상은 구체적으로 네 종류의 신화로 드러나며, 앞서 제기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극의 형식으로 더 온전한 해답을 제시한다. 네 종류의 신화는 다음과 같다.
1. 현재 혹은 기존의 안정된 상태를 묘사하는 신화(현 상태는 낙원으로 묘사될 때도 있고 폭정으로 묘사될 때도 있다.)
2. 기존의 안정된 상태를 위협하거나 희망을 주는 예기치 못한 이례적인 사건의 발생을 묘사하는 신화
3. 예기치 못한 이례적인 사건의 발생으로 기존의 안정된 상태 가지고 혼돈이 도래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신화
4. 혼돈으로부터 안정을 되찾는 과정을 묘사하는 신화(낙원을 되찾거나 폭정이 다시 시작된다.)
길이라는 메타 신화는 현재와 미래, 현재를 미래로 바꾸는 방식을 설명하는 특정한 관념(신화)이 구축되고 필요에 따라 완전히 재구축되는 방식을 보여 준다.
태초에 신의 은총을 입었던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그 결과고통스러운 현 상태로 추락하여 낙원으로 되돌아가려는 소망을 품다는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은 이러한 메타 신화의 한 예이다(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 나타난다).
메타 신화에서 보면, 길은 출발지와 종착지가 같다. 그 지점은 바로 우리의 도덕 지식, 즉 신념이 조건부로 확립된 상태를 말한다. (64-65쪽)
낙원-실낙원-복락원의 구조나 원형-상실-회복의 구조는 가장 대표적인 종교의 서사적 기본 틀을 형성한다. 혼돈과 질서 그리고 파괴와 복원의 패러다임은 가장 전통적인 신념체계의 모형이자 구조이다.
이 길의 순환은 피터슨이 지적하듯이 메타 신화 즉 신화의 배후에서 신화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서사적 플롯이다. 그러나 이 신념체계가 적용되지 않는 상황은 항상 발생한다.
지동설의 등장은 중세 신학자들의 신념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진화론의 등장은 유대/기독교적 세계관의 기초를 위태롭게 했다. 마르크시즘의 등장은 서구에서는 자본가를 그리고 비서구에서는 봉건귀족의 위상을 추락시켰다.
토마스 쿤이 적절하게 설명했듯이 과학사에서도 정상과학/비정상과학의 대립이 심화되다가 정상과학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례들이 증가하면 갑자기 패러다임의 전환이 혁명적으로 일어난다.
문화의 세계에서는 과학만큼 신념과 가치의 전환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익숙한 행동 규범과 가치질서를 버리려 하지 않는다. 새집이 견고한 것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헌 집을 부수려 하지 않는다.
이제 피터슨은 1장을 끝내고 2장에서 인지, 정서, 행동심리학을 동원하여 새로운 의미의 지도를 탐색한다. 현대 심리학이 어떻게 인간의 행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지 다음 장을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