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역사 5: 고대세계 5

로마

by 박종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었을 때, 로마 공화국은 고작해야 이탈리아반도의 서부해안 지대의 작은 영토만을 지배했다. 이후 3세기 동안 이 작은 공화국은 유럽의 대부분과 북부 아프리카를 포괄하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4세기말까지 영토는 대체로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도로, 도시, 기타 거대한 토목 구조물이 유례없는 규모로 건설되었다. 로마는 의심의 여지없이 서구 세계가 경험한 가장 위대한 문명이었다. 4세기말까지 영토는 대체로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도로, 도시, 기타 거대한 토목 구조물이 유례없는 규모로 건설되었다. 로마는 의심의 여지없이 서구 세계가 경험한 가장 위대한 문명이었다.


로마는 세계를 정복한 군대를 낳았으며, 후대의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건축물을 낳았다. 라틴어는 유럽의 교양 있는 계급의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제국의 중심은 언제나 동쪽에 있었다. 로마는 이집트에서 공급되는 곡물에 의존했다. 제국의 주요 도시들, 그 인구의 상당 부분이 소아시아의 동부 지방에 있었다. 대조적으로, 서로마제국은 대체로 농촌적인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국의 문화적 중심 역시 동로마제국에 있었다. 즉 안티오크(Antioch)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같은 헬레니즘화된 도시들에 있었다. 이 도시들에서는 여전히 그리스인들이 과학과 철학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로마의 저술가들은 그리스인들에게 빚이 있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인정했으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로마인들이 경제학에 그리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상가라기보다는 실천가요 과학자라기보다는 엔지니어라 한다. 그러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견될 만한 기여는 없었다 할지라도 이런 관점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얼마의 저술가들은 다른 형태로 기여를 했으며, 그 이유는 로마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47-48쪽)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마케도니아 제국은 헬레니즘에 바탕을 둔 일종의 코즈모폴리턴주의 즉 세계시민주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세계 정복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지역을 통합하고, 그 지역들 간에 상호 교류와 이해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기에 고대 이집트를 포함한 유라시아에서는 이러한 알렉산더의 지휘 아래, 다양한 문화와 지역에서 온 인간들이 상호 작용하고 혼합되어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일종의 세계도시들이 건설되었다.


그는 자신이 정복한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들과 상호 작용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코즈모폴리턴주의의 핵심적인 가치와 매우 일치한다. 로마제국은 이러한 헬라문명의 기초 위에 건설되었기에 문화의 독창성보다는 응용성을 중시하며, 특별히 법과 건축 분야에는 헬라문명을 진일보시켰다.

로마의 헌법은 정치권력을 토지소유 및 군역(military service)과 연계시켰다. 전쟁과 정복이 부의 주요 원천이었고, 병사들에게는 토지가 보상으로 주어졌다. 정치권력도 바로 이것과 연관되었다. 로마는 자신들의 부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고통과 위험을 견뎌야 했다.


따라서 지켜야 할 부를 더 많이 가진 부자들은 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전쟁에서 얻을 게 별로 없었고 세금을 내지 않았고 전쟁에 나가도록 요구받지도 않았다. 교역이 부에 이르는 한 가지 통로였지만, 정치권력을 낳기 위해서 그 부는 토지로 전환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토지가 부의 최고 형태였다.


로마, 특히 상류계급 사이에서 열광적인 지지자가 있었던 두 철학 모두 그리스에 근원을 두고 있다. 사노피의 디오게네스(Diogenes 410-320)가 창시한 견유주의(cynicism)와 키테온의 제논(Zenon, BC 335~263)이 창설한 스토아주의 (Stoicism)가 그것이다. 스토아주의의 마지막 위대한 해설자는 서기 161~1801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였다. 견유주의는 에피쿠로스(Epicurus, BC 341~270)의 후기 가르침처럼 ‘여기(here)’와 '현재' (now)를 강조했다.


욕구로부터의 자유는 필요를 최소한으로 줄임으로써,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 가난한 생활을 함으로써 취될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은 행복은 물질적 소유로부터가 아니라 덕에서 생겨난다고 믿었다. 도덕적 미덕은 유일한 선이었으며, 한 사람이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뜻했다. 견유주의자와 스토아주의자 모두에게 덕은 자연 순응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법률과 제도에 대한 판단기준이 될 자연법(natural law) 사상의 출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48-49쪽)

고대 그리스철학은 초기 자연철학에서 중기 인성철학을 거쳐 후기 처세철학으로 규정될 수도 있다. 조금 거친 분류지만 후기 철학은 주로 내세나 배후세계에 치우친 플라톤적 경향을 넘어서 인간이 현세를 잘살기 위한 자연의 원리(로고스)를 발견하고 그것에 순응하여 일상 속에서 평정심(아파테이아)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로고스는 자연의 원리이자 동시에 이성의 원리이기도 하기에 스토아주의자나 에피쿠로스주의자 모두 욕망보다 이성의 덕인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 다수 로마시민들은 로마군대가 행한 침략과 정복을 통해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쾌락을 추구했지만 로마시민의 자격을 부여하는 로마법은 이렇듯 자연과 선천적 이성의 원리에 기인한다.


결국 자연법의 기초는 자연의 원리와 인간이 타고난 본성에 있다. 인간은 타고나면 어떤 동작이 옳은지와 그렇지 않은지를 구별할 수 있는 도덕적인 직관을 갖고 태어난다. 이러한 직관은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자연이 부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인간이 타고난 도덕적 원리를 바탕으로 법을 제정하고 법을 이행함으로써 인간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인류에 적용되는 자연법 개념은 로마인들이 사회사상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분야, 즉 법률학을 위한 기초를 제공했다. 로마법은 후대의 법률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중요한 경제사상이 로마의 상법에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로마인들은 재산을 대단히 존중했으며, 법률 안에는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한 많은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인과는 독립된 실체를 갖는 법인 (corporation) 관념의 기원은 로마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약에 관한 법률이 교역을 가능하게 했으며 재산을 보증했고 양도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교역이 허용되기는 했지만, 교역을 통해 취득된 부는 토지 재산에서 얻어진 부보다는 논쟁의 여지가 더 많았다. 그래서 언제나 거의 무(無)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인 교역에서 나온 부는 토지에서 파생된 부와는 다른 식으로 좀 더럽게 채색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스토아사상은 상법에 나타난 합리성(reasonableness) 개념의 기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가서, 만약 모든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계약에 동의했다면 그 계약은 틀림없이 정의롭다는 사상이 특히 중요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계약이 무효화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폭력에 의한 협박이 있어야 했다. 고의적인 사기에 의해 이루어진 계약이 무효화될 수 있는 것은, 계약에는 동의라는 요건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는 물론 로마도 아주 먼 과거로 보일 수 있다. 그러 나이 시기에 발달한 사상들은 시간적으로 아주 먼 과거라는 사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스 철학은 서구 사상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 책에서 논의되는 경제사상은 그리스 철학에서 이어지는 서구사상이 갖는 폭넓은 전통의 일부를 이룬다.


고대 세계에서는 자급자족과 고립적인 교환이 지배적이었다. 분명히 이 교환의 조건들이란 사람들이 통제하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들이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해 큰 관심이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비록 현대적 의미의 시장경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상업활동이 충분히 발전되었고 고대인들에게는 중대한 도전이었다.


사상가들은 상업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사상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알고 있지만, 상인들 자신이 사물을 어떤 식으로 보았는지에 관해서는 사실 별로 아는 게 없다). 이 두 가지 주제, 즉 상업의 정의와 도덕이 17세기까지 경제적 문제에 관한 토론을 지배했다. 17세기에 비로소 시장경제와 상업적 사고방식의 존재가 받아들여지게 되었다.(49-51쪽)

상법은 거래와 교환에 관한 일종의 경제법이다. 상법의 기원에 자연법이 그리고 스토아학파의 로고스 중심 사상이, 더 나아가 헬라적 인본주의가 있다는 것은 저자의 탁월한 역산이다.


현대사회에서 상법은 사회의 법적 규제를 제공하고, 비즈니스와 경제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규칙을 제공한다.. 이러한 법적 규제와 규칙은 합리적이며, 상법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합리적 원칙과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법은 계약의 유효성을 결정하기 위해 합리적인 기준을 제공한다. 계약은 자유의지로 체결되며, 이를 위반하는 행위는 불법적이다. 또한, 상법은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합리적인 규칙을 제공한다. 상표, 저작권, 특허 등과 같은 지적 재산권은 비즈니스의 핵심 자산이므로, 이러한 규칙은 글로벌화된 경제환경 속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정의와 공정성이라는 교환과 거래의 경제적 규범은 결국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낙관적 토양 위에서만 가능했다는 것을 바로 서양 경제학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런 합리주의적 전통은 20세기 후반 행동경제학이 출현하기 전까지 주류를 이루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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