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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Dec 15. 2021

Afternoon cafe

오후 1시. 기계적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그녀의 손은 밀려드는 주문을 능숙하게 처리했다.

“카페라테  잔 나왔습니다.”

점심식사 후 카페를 찾는 손님으로 북적이는 시간이다. 오피스 거리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지연에게 반복되는 일상이었을 뿐인 이 시간이 특별해진 건 한 달 전부터였다. 신경 쓰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거의 일정한 시간에 홀로 카페를 방문했다. 늘 정해진 음료를 한 잔 주문하고 30분 정도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거나, 아무튼 혼자의 시간을 농밀하게 즐기다 떠났다. 처음 그 사람을 봤을 때 깔끔하게 정돈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하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길을 끌었다. 그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건 지연뿐만이 아니었다. 카페 안의 대부분의 사람이 우연을 가장하듯 눈을 돌려 지나치는 시선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 지연은 문득 궁금해졌다. 본인은 이 시선을 의식하고 있을까. 아니면 개의치 않고 자신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을까. 평범한 외모에 그에 걸맞은 인생을 살아온 지연은 그 사람의 세계를 알 수 없었다. 그 부분이 지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사람이 있는 공간은 마치 팝송 같았다. 우연히 듣게 된 몽환적인 음률의 팝송. 영어에 능하지 않은 지연을 스치듯 지나가는 뜻 모를 가사는 공기에 떠도는 언어일 뿐,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노래를 리드하는 음률은 그녀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되고 마는 음악은 마치 그 사람과 닮았다.

 

중독.

지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에게 중독되고 말았다.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그 사람이 나타날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자동적으로 고개를 돌려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이 실망으로 가득 차지만 애써 표정을 가다듬는다. 영업용 미소를 짓고 더 힘차게 인사한다. 그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설레는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지연은 그렇게 그 시간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지연은 감히 그 사람의 단 한 송이 장미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가끔 스치듯 얽히는 눈빛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오랜 시간 무미건조하게 메말랐던 감정이 되살아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가 품은 욕심은 소박했다. 그저 그 사람이 오래도록 자신의 카페를 방문해주길 바랐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가슴이 떨리는 이 시간이 조금 더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 단지 그것이었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난 시각. 카페의 문이 열리고 그 사람이 들어왔다. 지연은 반가운 감정을 마음 한편에 숨겨 두고 인사했다. 하지만 이내 인사의 끝맺음은 허공에서 길을 잃었다. 그 사람 뒤를 따라 다른 이성이 들어왔다. 둘의 사이가 매우 친밀해 보였다. 지연의 마음이 땅바닥을 굴렀다. 황급히 떨어진 마음을 힘겹게 주워 담아 아무렇지 않음을 가장하며 주문을 받았다.

지연은 자신이 그 사람의 세계에선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람에게 지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메인 포커스에서 벗어나 흐릿하게 비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지연은 커피를 내리기 위해 카운터를 등지며 입안에서 느껴지는 쓴맛을 삼켰다. 별다른 문제가 없어 뽑지 않고 두었던 잇몸 깊숙한 곳의 사랑니가 욱신했다. 저도 모르게 자조적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고갯짓으로 평정심을 찾았다. 둘의 웃음 섞인 대화가 등 뒤에서 울렸다. 지연은 뒤돌아 공연히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음료를 건넸다.


카페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온 지연은 힘없이 소파에 앉았다. 식사는커녕 씻는 일조차 뒤로하고 멍하게 앉아만 있었다. 몸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괜히 발끝으로 바닥을 찼다. 두 팔을 허벅지에 올려두고 턱을 괴었다가 풀었다, 의미 없는 동작을 반복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니, 어쩌면 복잡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인지도 모르겠다고 지연은 생각했다.

혼자 했던 찰나의 짝사랑은 잠시 달콤하고 또 쌉싸름했다.    

 

변함없는 일상의 어느 날이었다. 카페 문이 열리고 그 사람이 들어왔다. 여느 때와 같은 오후의 시간, 여느 때와 같지 않은 차림이었다. 늘 편한 청바지에 깔끔한 셔츠 혹은 니트를 즐겨 입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은 깔끔한 정장 차림이다. 도시적인 이미지에 조미료를 가미한 듯 더욱 이지적으로 보였다. 지연은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세련된 세미 정장 바지 아래 날렵하게 쉐입이 잡힌 하이힐이 멋들어졌다. 지연이 무심코 말을 걸었다.

“오늘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평소와 다른 차림이시네요. 굉장히 세련돼 보여요.”

그 사람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날 보고 있었어요?”

지연에게 대답하는 그 사람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 사람의 말에 지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 어떤 착각도 하지 않기 위해 어떠한 접점도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지연이었다. 단골이라고 해도 좋을 그 사람에게 사적인 말 한마디 걸지 않았던 이유였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지연에게 그 사람은 여느 때와 같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커피를 내민 지연의 손끝과 커피를 받는 그녀의 손끝이 맞닿았다.

둘은 오랫동안 손끝이 닿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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