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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Dec 28. 2021

bracelet

“아!”

지수는 자신의 팔목을 보고 외마디 소리를 냈다.


3년째 차던 팔찌가 사라졌다. 구입 후 한 번도 빼본 적 없는 팔찌였다. 어디에서 잃어버린 걸까. 아니, 어느 순간에 사라져 버린 걸까. 지수는 신중히 생각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사라진 물건은 사라진 순간,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따위를 궁금해해 봤자 답은 영원히 알 수 없다. 고민한들 답답한 건 자신이다. 지수는 이내 생각을 멈췄다.

사라져 버렸다. 이미.

그 사실은 인정했다. 그렇다고 속상한 감정마저 코 푼 휴지 버리듯 가볍게 져버리기 힘들다. 지수는 속상했다. 그것도 매우.

 

“얘 오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저러다 땅으로 꺼지겠는데?”

선희가 강의실에 들어오며 수연에게 물었다. 책상에 왼쪽 볼을 짓누른 채 엎드린 지수를 보며 수연이 대답했다.

“팔찌를 잃어버렸대.”

답을 들은 선희가 어깨에 맨 가방을 내리고 자리에 앉으며 다시 지수에게 물었다.

“비싸게 주고 산 거야? 아님, 뭐 의미 있는 물건이었어?”

“그건 아닌....”

지수는 잠시 말을 삼켰다.

“아니야, 한 만 원 줬나, 길에서 싸게 주고 산 거야.”

“뭐야~ 그럼 이 기회에 새 걸로 하나 사. 난 또, 명품 팔찌라도 잃어버린 줄!”

선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명품 팔찌보다 마음에 든 물건이었는데...’

지수는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일은 아닌 듯하여 간략하게 말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편이 먹먹했다.

 

팔찌는 3년 전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 창업 경험이라는 취지로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노점에서 팔찌를 유심히 보던 지수에게 젊은 주인은 자신도 이제 막 졸업하고 물건을 파는 일을 시작했다는 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지수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는 들지만 이게 꼭 필요할까를 고민했다. 팔찌는 검은 가죽이 두 줄로 꼬여 네모난 금속으로 여며진 심플한 모양이었다. 이내 지수는 ‘어쩐지 사지 않으면 계속 생각이 날 것 같다’는 마음에 그것을 구입했다.


어느 날 눈에 띈 팔찌였고, 그냥 샀을 뿐이다.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었고 추억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지수는 예상외로 그 팔찌가 마음에 들었다. 액세서리에 별로 관심이 없던 지수의 눈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것뿐, 첫눈에 반했던 걸지도 몰랐다.

 

지수는 무엇이든 쉽게 질린다. 무언가에 쉽게 빠지는 일도 잘 없다. 그러다 가뭄에 나듯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주야장천 그 하나만 팠다. 하지만 몰두의 기간이 매우 짧았다. 금세 질리고 만다. 문화생활이든 스포츠든 취미든.

지수는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행복을 느꼈고, 그 감각이 쉬이 사라졌을 때 지독한 공허를 느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존재를 찾아 단발로 나마 아드레날린을 만끽했다. 그 과정의 반복이 자신을 텅 비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그 잠깐의 행복에서 느끼는 만족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수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지루해지고 메말라 갔다. 도시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 같은 작은 반짝임을 희미하게 품은 채.

 

그런 지수가 3년 동안 질리지도 않고 매일 차던 팔찌였다.

그 팔찌가 사라졌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했던, 어쩌면 지수에게 다시는 없을 단 하나의 연속성.

 

남들이 보기엔 어디서든 흔히 구할 수 있는 저렴한 팔찌일지라도, 지수에게는 달랐다. 적어도 지수에게는 다른 의미였다. 가슴 절절한 이유를 부여하지 않아도 의미는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특별하지 않아도 존재되는 그 어떤 의미. 하지만, 그래서, 뭐?

그렇다고 구태여 타인에게 모든 걸 알아달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다. 현실에서 나의 의미가 그들의 의미와 합치할 수 있는 기적은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린 서로 많은 것을 삼키고 삼키고 또 삼키며 사는 것이겠지.


지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건 모두가 똑같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비어버린 팔목을 무심히 문질렀다. 지수의 팔목 언저리에서 쓸쓸한 온기가 피어오르다,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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