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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Jan 19. 2022

Gypsophila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꽃다발을 샀다. 주황색 장미와 안개꽃으로 이루어진 다발. 가녀린 주황 장미가 하얀 안개꽃에 안겨 수줍은 아름다움을 흘렸다.

역 3번 출구 앞, 노부부가 사람 좋은 미소로 꽃을 판다. 비가 오는 날 이외엔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늘 그 자리에 있다. 그 앞을 지나면 향긋한 꽃 향기가 난다. 마치 “오늘도 고생 많았어” 하고 지친 모든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 같다.


나는 늘 눈으로 꽃을 훔쳤다. 빨간 정열의 장미 다발, 노랗고 청순한 프리지어, 익숙하지 않은 이름 모를 어떤 꽃. 내 방에 저 꽃을 가져가 장식해 둔들, 황량한 외로움이 가실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내가 외출한 동안 텅 빈 방에 혼자 두어야 할 꽃에게 미안하여 나는 늘 눈으로만 꽃을 훔쳤다. 너는 그곳에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렴. 그것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에 대한 배려였다. 소유하지 않는 것.


그런데 오늘은 이제껏 보지 못한 주황색 장미가 있었다. 하얀 안개꽃과 함께.

흔히 인터넷 짤로 볼 수 있는 ‘어머, 이건 사야 해!’가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이미 나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계산하고 있었다. 카드와 스마트페이 지불이 만연한 사회 안에서 혹여나 필요할까, 타칭 ‘준비성이 철저한’ 자칭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내가 늘 지니고 다니는 만 원. 쓸 일이 없어 오랜 시간 지갑 한 편에 부적같이 있던 현금을 노부부에게 건넸다. 부디, 행복하세요. 나의 부적을 전해드려요.

단돈 만 원으로 행복을 샀고, 받은 이는 알 수 없을지 모를 행복을 전했다.

 

“어? 눈이다.”

안개꽃같이 하얀 눈이 내 어깨에 살짝 내려앉았다. 하나 둘 진눈깨비처럼 내리더니 눈 깜짝할 새에 하얗게 세상을 덮어나갔다. 천사의 실크 자락이 흩날리 듯 하늘하늘 춤추는 눈송이가 나를 포근히 감쌌다. 나의 손에 들려 있는 꽃다발 속 가녀린 주황 장미와 따뜻 하안개꽃처럼, 그렇게 나는 하얀 눈 안에서 장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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