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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Mar 29. 2022

심해어

그녀의 어깨엔 아주 못생긴 물고기 타투가 있었다. 그것은 왜소한 어깨를 더욱 볼품없게 만들어 차라리 없느니만 못 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물고기야?"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여 어깨를 지그시 바라본 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배럴아이, 심해어야."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양 그녀의 눈은 반짝였다. 저따위 징그러운 물고기 그림의 어디가 그리도 예쁘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서 그 물고기를 잡아 뜯어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말했다.

"이왕 타투를 할 거면 예쁜 물고기로 하지 그랬어, 이게 뭐야. 징그럽게."

그녀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심해어가 제일 좋아, 그중 배럴아이를 가장 사랑해. 나는 이 물고기처럼 깊은 바다에 몸을 숨기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죽은 듯이 살아갈 거야. 그런 내 진심이 담긴 타투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되물었다.

"깊은 바다에 살고 싶다면 상어같이 멋진 놈으로 골라도 좋았잖아."

그녀는 잠시 침묵한 후, 이내 입술을 움직였다.

"상어는 안 돼..., 내가 그만큼 강하지 않으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겨우 내 귀에 닿았고 이내 소멸됐다. 그녀의 눈빛이 사그라질 듯 생기 없이 깜빡였다. 마치 죽은 자의 눈처럼.


그녀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관심을 원했다. 나를 포함한 아주 많은 이들이 정말로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진심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그 누구도 특별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사랑스럽다는 듯 말하는 물고기 그림조차 질투했다. 어쩐지 그날, 그녀에게 절대 선택받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를 떠났다.


문득문득, 그녀를 생각할 때 그녀의 어깨에서 유영하던 못생긴 심해어를 함께 떠올린다.


그녀는 여전히 그 깊은 바닷속 어딘가에 몸을 숨긴 채 힘겹게 세상을 살아내고 있을까.


나는 그녀가 진실로 불행하길 바라며 동시에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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