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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Apr 09. 2022

들어줘서 고마워. 모두 행복하자.

오늘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정확하게는 우리 집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몰라. 나는 어려서부터 예민하고 우울한 아이였어. 사람들에게 호감보다는 놀림을 더 받았던 것 같아. 얼굴도 까맣고 눈도 처진, 하나도 예쁠 것 없는 아이였기에 그랬을까? 아니면 그냥 타고난 아우라가 별로였을까? 아직도 참 궁금해. 지금 와서 이유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니까.


나에게는 연년생 언니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참 좋아했어. 언니는 예쁘고 야무진 사람으로 어딜 가던 사랑을 받았지. 나는 그런 언니를 질투하면서 동경했어.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던 것 같아. 비단 어릴 때뿐만 아니라 다 큰 성인이 되었을 때도. 하루는 새로운 목표와 다짐을 적은 다이어리를 들고 언니 방에 놀러 갔어. 항목 중에 ‘언니 같은 사람 되기’가 있었는데 그걸 본 언니가 왜 자신처럼 되고 싶냐고 묻더라. 나는 멋있으니까!라고 힘차게 대답했어. 내 말에 언니가 담담하면서 공허한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어.


“난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멋진 사람이 아니야.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단, 그날 언니의 모습이 어딘지 슬픈 잔상으로 남았어. 아마 그때도 언니는 아무도 모르게 우울을 견디고 있었겠지. 가족에게조차 내비칠 수 없었던 마음의 병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지금도 알 수가 없어.


부모님은 말이야, 우리를 정말 사랑했어. 나름 부모로서 해야 할 기본적 의무는 다 해주려고 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양육에 무지했지.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몰랐어. 그 시대 부모는 대부분 그랬을 거야. 그런 말 있잖아. “낳으면 알아서 큰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옛날엔 그게 보통의 사고방식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나에게 그 ‘무지’는 큰 죄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보편’이었으니까. 아무튼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사랑은 주었지만 필요한 영양분은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어.


자, 동물을 키운다고 치자. 동물이 사랑스럽기는 한데 키우는 법을 몰라. 마음을 표현하거나, 사료를 주거나, 그런 돌봄 없이 눈으로만 예쁘다, 하는 게 최선이야. 그러면 동물이 직접적인 사랑과 보살핌에 굶주려 사랑을 주세요 하고 온몸으로 표현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반응은 늘 싸늘했지. 내가 너를 이렇게나 사랑해주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매사 불만인 거니? 넌 왜 그런 아이인 거니? 이런 반응이 당연했어. 나는 점점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지. 아무짝에 쓸모도 없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이었구나.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하고. 아주 오랜 시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어.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 언니도 그랬던 거야. 참 신기하지? 환경이라는 게 이렇게나 중요한 거라니까? 그리고 더욱 운이 없었던 건 우리 자매 모두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거야. 재수도 없지. 좀 잡초처럼 강한 의지를 탑재했으면 얼마나 좋아? 신도 참 무심 하다 싶다.


나는 정말 매일 울분을 토했어. 나 아파요, 나 좀 살려주세요, 아니, 나 살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악을 쓰고 살던 내가 결국 살아남았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지?


나는 언니가 떠난 후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지. 입으로 죽고 싶다. 죽겠다고 말하는 이들은 잘 죽지 않아. 진짜 죽을 사람은 말을 않지. 그들은 아주 깊은 어둠과 아픔으로 공허해져 점점 메말라가고 피폐해지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아주 조용히. 언니가 떠난 후 나는 왜?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우연히 언니 방에서 발견한 일기장에서 그 이유를 알았어. 정말 아팠더라, 우리 언니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심장이 지구의 핵까지 떨어졌어. 그 순간의 소름 끼치는 느낌을 아직도 기억해. 아무튼 말이야, 주변에 조용히 아파하는 사람이 없는지 신경 써서 잘 봐야 해. 아주 중요한 포인트야! 그들이 결심하기 전에 전조증상이란 게 있더라고. 우리 가족은 놓쳐버렸지만, 다들 꼭 그때의 시그널을 잘 잡길 바라.


언니가 떠나고 한 동안, 남겨진 엄마 아빠와 나는 절망과 그리움에 절어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너무 다행히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어. 오히려 셋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죄책감을 가졌지. 그 마음이 우리를 똘똘 뭉치게 만들었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디테일까지 푼다면 책 한 권은 나오니까 간략하게 정리할게. 우리는 그 후 서로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어. 많이 표현하고 아껴주며 지금은 사이가 아주 좋아. 셋 모두의 가슴에 검게 타들어간 부분이 존재하는 건 확실하지만 구태여 거기에 집중하지 않지. 우리는 꽤 건강한 멘털로 잘 지내고 있어. 이게 다 우리 언니 덕분이야. 참 고맙고 사랑해.


주절주절 말이 많았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나는 우리 부모의 무지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어. 그리고 망가진 삶을 살았지. 아주 큰 상실을 겪고 좌절한 시기가 있었지만, 중심을 잡고 일어났어.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 결국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제대로 잘 살고 싶은 사람이었더라. 우리 언니도, 아니,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이 그런 마음이 아닐까 해. 잘 살려면 말이야, 자신이 죽을 만큼 노력해서 변해야 해. 환경도 아주 중요하지, 물론. 정말 정말 큰 영향을 끼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있어. 나는 이제 부모의 무지를 원망하지 않아. 상처받지도 않아. 그들을 마음으로부터 이해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우리 모두 매일이 즐겁진 않아도 희망과 사랑이 있는 삶을 살자. 외로움과 고독, 공허와 허무가 찾아오는 날도 분명 있겠지.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거야. 슬플 땐 슬퍼하고 기쁠 땐 기뻐하고, 우울할 때 가끔 땅굴 파고 들어가도 돼. 다만 움직이는 것을 잊지 마. 우리는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어. 아니, 꼭 행복할 필요도 없지! 그냥, 적어도 불행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아주 조금씩 노력해보자. 모두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리고 재밌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자.


그럼, 여기까지 하고 나는 이만 말을 줄일게.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정말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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