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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Apr 26. 2022

나를 안아주는 사람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마치 몸의 수분이 전부 눈물인 것처럼. 지하철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갑자기 터져 나오는 슬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사람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울고 다닐 때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잘 울지 않는다. 남편 앞에서조차.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를 극한의 상황을 빼고는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술을 마신다. 아주 많이 취해버릴 정도로.
만취했을 때, 나는 이제껏 묵혀둔 슬픔을 전부 쏟아낸다. 이 감정을 지금 빼놓지 않으면 또다시 우울이 찾아올 것 같기에 건강한 방법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만다.

결혼하고 처음 만취해서 눈물을 토해낼 때, 남편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조용히 화장실에 들어가서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하지만 쌓인 응어리는 결국 소리를 내뱉고 만다. 화장실 밖에서 남편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리면 눈물을 잠시 멈추고 애써 괜찮은 척, 잠시 나의 시간을 달라고 했었다.
비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모습에 놀란 남편은 안절부절못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듯했다. 상대에게 무력감을 줬다는 죄책감에 얼른 퉁퉁 부어버린 얼굴을 정리하고 나와 웃어 보였다. 남편은 늘 안타까운 얼굴로 괜찮냐는 말만을 반복했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런 나의 모습을 보아 온 남편의 행동이 변했다. 내게 그 시간이 필요할 때 조용하게 말없이 나를 혼자 둔다. 그리고 기다려준다. 혼자 실컷 울고 나오면 아무 말 없이 나를 꼬옥 안아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인다. 내가 진정이 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나는 예전처럼 애써 웃지 않고 엉망이 된 얼굴로 코를 훌쩍이며 답을 하던가 고개만 끄덕인다. 그리고 완전하게 진정이 된 다음 날이면 꼭 말해준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 그래도 괜찮아져서 다행이야."라고.

나는 이 사람에게서 너무 많은 구원을 받았다. 나를 온전하게 받아들여준 사람이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지독한 우울이 나의 일부이며 그냥 거기 존재하기에 나인 것처럼 이해해준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까지 알아준 적이 있었던가.

당신을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나도 당신에게 꼭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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