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고 상처를 잘 받는 나는 우울한 날이 많았다. 어느 날은 늪에 어느 날은 우물에 또 어느 날은 바다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 우울은 빠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이 나를 무겁게 끌어당겼다. 질척한 것들이 몸의 여기저기 들러붙어 나를 천천히 집어삼킬 때면 반항할 의지를 잃고 그저 깊이깊이 가라앉았다.
살려달라는 말은 목구멍에 박혀 내벽만 긁어댈 뿐 나오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영겁의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런 나에겐 어려서부터 단 하나의 소망이 있었다.
내 우울이 나를 저 깊은 어딘가로 끌고 내려갈 때,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가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지독하게 소망하고 또 소망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그는 내 우울의 바다에 함께 들어가지 않았다. 우울에 빠지는 날이면 멋진 팔 근육을 써서 나를 가볍게 끌어올렸다. 괜찮냐는 말 대신 더는 없을 밝은 미소로 달달구리한 거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도넛을 내 입에 넣어주고 입 안에서 달콤하게 녹아버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내가 더 이상 깊은 바다와 늪에 빠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나를 감쌌다.
내가 바라던, 함께 바다에 빠지는 행위보다 몇 배는 더 구원이었다.
내가 우울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는 그에게
목숨을 걸어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당신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