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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Apr 29. 2022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정기적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어떤 내용의 상담이 진행됐는지 간단하게 이야기하다가, 깔깔대다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였을까, 스스로조차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십여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공황과 범불안장애가 극심했던 그때, 나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점심의 종로, 퇴근길의 3호선 지하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그렇게나 눈물을 흘렸다.


종로에서 울음이 터졌을 때, 고개를 푹 숙인 내게 길거리 전단을 나눠주던 여자가 손을 내밀다가 내 얼굴을 보고 황급히 전단지를 거두었던 기억이 있다. 퇴근길 3호선에서 갑작스러운 공황이 찾아와 차마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아무 역에서나 내려 플랫폼 의자에 앉아 과호흡과 공포가 가라앉길 필사적으로 인내했던 기억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드문드문 지나다니던 사람들 사이에서 또 눈물이 터져 주체 없이 울어대며 집으로 돌아와 온몸을 웅크리며 울음이 잦아들길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터지던 어느 날, 버스 맨 뒷좌석에서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행선지를 물어보며 내 얼굴을 봤을 때 흠칫했던 기억. 나는 여자의 물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애써 태연하게 대답을 해주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낯선 여자는 안타까움과 당황의 빛이 담긴 목소리로 말 끝을 흐리며 내게 말했다.


"왜 울고 계세요... 울지 마세요..."


어째서였을까. 그 말이 따뜻해서 더 슬펐던 , 그런 기억들.


오늘 상담에서 나는 선생님께 말했다.

_ 선생님, 글을 쓰는 게 너무 행복해요. 하지만 진짜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봐야 하는데 그 일이 너무 힘들어요. 저는 여기서 멈춰야 할까요?

선생님은 멈추지 말라고 했다. 잘하고 있는 거라고, 잠을 제대로 자고 산책을 꾸준히 하고 페이스를 맞추며 쓰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자신의 환자 중엔 작가들도 있는데 그들도 같은 이야기를 종종 한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또 울음이 터졌다.

_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할까 봐, 이 감정과 상황을 숨기려고 했어요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나를 보자, 선생님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_괜찮아요. 잘하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연신 작게 코를 훌쩍이시며, 과하지 않은 공감으로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병원에 가기 전, 너무너무 답답해서 유튜브로 제너럴 리딩 타로를 봤다. 개인 타로는 너무 나에게 국한되어 마치 정답을 정해주는 것 같아서 선호하지 않는다. 제너럴은 말 그대로 제너럴이니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는 형태로 기분이 우울할 때 한 번 씩 보는데, 오늘 영상이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_강한 수호의 기운이 있으니, 자신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글이 쓰고 싶어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현 에세이 작가가 운영하는 카페를 한 시간 반이나 걸려 찾아갔다. 작가들과 이야기하며 크게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그들에게는 매우 강한 이타심이 있다는 것. 그 이타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얼러주고 위로해 주고 있다는 것. 나에게 결코 없는 그것.


나는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나불거리며 결국은 자신이 위로받고 싶은 글을 써댔다. 그리고는 왜 내 글에 위로받지 않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기적인 글로 진심을 보이지도 않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꽁꽁 숨겨둔 채 감히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고 까불거렸다.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빨개지고 심장이 쪼그라들어, 그 사실을 깨달은 날 인스타에 있던 글을 하나 빼고 모조리 삭제했다. 너무 부끄러웠고, 또 더는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 자신을 달래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조심히 하자 생각했다. 그랬더니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며 사달이 났다. 나는 도무지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쿵, 하고 머리에 반짝임이 터졌다.


'감사하는 마음'


그래, 이타심 같은 고결한 목표를 가지기 힘들다면 일단 감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나의 고민에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상담 선생님을 위해.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전화해 미주알고주알 떠들 수 있는 존재 엄마를 위해. 생면부지 생판 처음 보는 낯선 여자의 눈물에 작은 위로를 건네던 그 사람을 위해. 세상에 감사를 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예전처럼 고개를 숙여 숨죽여 우는 대신 꼿꼿이 허리를 펴고 눈물을 거뒀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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