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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Feb 03. 2024

제주의 첫번째 밤

 제주로 가는 날이다. 오전 8시 출발 비행기라 이른 시각에 출발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 잠이 더 오지 않기 일쑤이다. 뭔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거나 다음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다 보면 유독 더 불면증에 시달린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여러 상념이 떠오르고 뭔가 불안하고 쓸쓸해진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곤 한다. 그렇게 잠이 들기 위한 사투를 벌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아침이다. 피곤함과 약간의 어지러움이 도는 몸을 가누며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이 그리 자주 있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륙하기 전에 항상 떨린다. 비행기가 무사히 떠야 할 텐데, 무사히 도착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피어오른다.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지상에서의 걱정과 불안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 순간에는 그저 다시 땅을 무사히 밟고 싶다는 삶에 대한 어떤 열망만 남는다. 다시 지상에 내리면 또다시 금세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되지만 말이다.

 나는 광합성을 하는 식물인 것처럼 햇빛을 쬐어야 기분이 좋아지는데 안타깝게도 여행기간 내내 제주의 날씨는 흐리고 비가 올 예정이라 했다. 흐린 날임에도 공항에 내려 야자수를 바라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일단 휴가여서 좋고 살던 곳을 잠시 떠나와서 좋고 제주여서 더 좋은 것 같다. 왠지 제주는 쉼과 여유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숙소를 향해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탔다. 바닷가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는 비가 내리는데도 민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파도가 일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으니 시끄러운 마음도 잠시 조용해지고 조금 평안하다.

 카페에 머무는 사이 미스트처럼 얕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세찬 비바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워낙 바람이 세서 가져온 우산이 자꾸만 뒤집혔다. 마침 근처에 보이는 소품샵으로 비를 피하며 구경할 겸 들어갔더니 감귤이 그려진 우비가 보였다. 우비를 마지막으로 입어본 게 언제적이었더라 생각하며 하나 구매했다. 패딩 위에 꾸역꾸역 우비를 끼워넣으니 모습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우비를 입고 비바람을 뚫고 동생과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그게 즐겁게 느껴졌다. 여행이라서 그런걸까. 잠깐 일상의 장소에서 벗어나 다다른 것뿐임에도 왠지 순간순간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여행을 떠나온 장소에서는 어쩐지 평상시보다 좀 더 너그러워지고 안정된다. 가만히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마냥 아깝게만 느껴지지 않고 속상하게 여겼을 일도 괜찮아 하면서 넘길 수 있다. 이 마음을 일상으로 그대로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나의 대부분의 시간은 잠시 떠나온 장소 안에서 흘러가는 것이니까 그 시간이 훗날 후회스럽지 않을 수 있도록, 일상의 순간들을 소중하게 소중하게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다.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여행의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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