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사상
*https://brunch.co.kr/@73bd371a4e784f6/64 참고
행복해지려면 모든 번뇌를 끊어낸 아라한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며 남은 시간을 수행에 몰두하려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미련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명상했습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잊혀진 채 홀로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는 길이 두려웠습니다.
100% 아라한이 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기에,
종교에 심취해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이 될까 봐 불안했습니다.
차라리 누군가 "절대 도달 못 하니 포기해."라고 말해주거나,
과학적으로 해탈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랬다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일한 탈출구라고 믿었던 길을 의심하자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긴 곳이 결국 모든 것을 버린 쓸쓸한 노년일까 봐.
오랜 고민 끝에 다시 한번 제 목표를 떠올렸습니다.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려 했던가? 아닙니다.
오직 저의 행복을 위한 길을 찾고 있었을 뿐입니다.
완벽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작은 해탈'이라는 해결책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는 설정 놀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진심입니다.)
'작은 해탈'은 모든 번뇌와 두려움이 사라진 절대적인 해탈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움, 슬픔, 공허함이 여전히 느껴지지만,
그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부처가 허들을 완전하게 부순 사람이라면,
'작은 해탈'은 허들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해지는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길은 비교적 쉽습니다.
다른 일과 병행할 수 있기에,
실패하더라도 무언가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합리화가 부처의 수행을 방해한 마라 파피야스와 같다면…
결국 제가 패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