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기웃거리는 건
계속
어제의 특권을 요구하고
어제의 자리를 탐하고
어제의 이름을 달고자 하는 자
어제에 머무르려는 자는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여러 번 살 권리를 요구하고
어제의 권리를 영원한 귀족의 자격으로 착각한다.
매일 조금씩 그 자격을 잃어감을
어제의 특권은 다음 세대에는 구닥다리임을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의 어제는 짝퉁 권리임을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어제’를 기웃거리는 건
지난날의 궤적을 뒤지고 뒤져
그래도 그럴듯한 것을 하나씩 건져낸다.
장관, 의원, 교수, 대표, 회장, 사장, 시장, 지사….
한때는 그랬다.
힘이 있었고, 싸워서 이겼고, 꼭대기였다.
미련에 빠져든다.
계속 붙들고 싶다.
아쉬움에 가슴이 저민다.
한숨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흐려진 이름표를 눈물로 닦는다.
오늘보다 어제가 그립고
어제의 자리에 머물고 싶고
커서를 어제로 옮기고 싶은 이들
구겨지고 흐릿한 그때를 꺼낸다.
그리고 슬그머니 가슴에 매단다.
주름진 목에 힘을 주고 뒤틀린 어깨에 뽕을 넣는다.
오늘이 아닌 어제의 자리에 목을 매고
어제의 명성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어제의 힘을 지속하려 발버둥 치는 건
그래서 오늘을 제치고 어제를 내세우는 건
여전히 그때 그 시절 존재라는 신분증 위조다.
에이, 설마.
삶은 힘을 채우고 지속시키며 축적하는 과정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건 본능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그러니 그도 본능에 충실한 존재려니 하자.
그럼에도 어려운 건
건질 것 없는 어제를 보내고
별 볼 일 없는 오늘을 버티고
내일의 희망도 없는 자의 불건전한 열등감이리라.
들먹일 어제가 없고
거들먹거릴 이름이 없으니 다행일까.
오늘의 적은 어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