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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싫어함’의
목록이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많다

by 지금

시간이 흐를수록 '싫어함'의 목록이 추가된다.


때론 거칠고 모난 관계를 다듬어준다며 주종불문 들이붓던 술도

그곳 그 집 그 음식을 탐하며 거리불문 찾던 맛집도

괜히 사회적 존재라 했겠냐며 성격불문 쫓던 모임도


역마살을 구실로 툭하면 이산 저산 이 땅 저 하늘 쏘다니는 일도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든다며 이 인연 저 연줄 내세우기 위한 고민도

유행에 굴복하여 철을 따라야 한다며 다그쳤던 철 모를 의무감도

서서히 힘을 잃는다.



'싫어함'은 삶의 정리다.

좀스러움을 멀리하고 권태에 빠지지 않도록 점검하는 일이다.

'싫어함'은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던 끈을 하나하나 끊어내는 일이다.


'싫어함'은 삶과 삶을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다.


'싫음'은 때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쾌락을 맛보지 못하게 방해하지만

가장 중요한 ‘나’를 지키는 의식이 된다.




이 세상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많다


텅 빈 양심, 이젠 늦었다고 가정하는 것, 삶 위에 같은 삶을 포개는 것, 앉아볼 겨를도 없는 일정, 주변 소리를 잡아먹는 검은 소음, 천하고 졸렬한 파렴치, 누구처럼 살라는 조언, 환자가 아닌 자신을 위해 청진기를 드는 의사, 빠르게 지나간 시대의 사람으로 만드는 자외선, 누구에게나 주어진 수면이라는 생물학적 요구를 사정없이 짓밟는 모기, 눈치 없이 나와 그 사이에 눌러앉는 사람, 몰라서 선택한 길을 걸을 때 몰려오는 때늦은 후회, 눈길 한번 마주친 적 없이 사라진 숱한 시간, 당연한 사실이 이익 앞에서 변질되는 것, 도덕의 나침반인 죄책감이 작동하지 않는 것, 내가 선택한 것의 감옥에 갇혀 자신을 고문하는 것 같은 느낌, 사회의 규범과 기대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일, 더 나은 것이 나타나면 손쉽게 버려지는 약속, 감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수치심….


누군가가 흘리고 간 끈적이는 냄새, 작별인사 없는 이별, 스토리 없는 장소, 긴 세월이 내려앉은 낡은 지붕, 숱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고 뒤틀리고 부서진 창문, 무거운 짐을 지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듯한 불안한 걸음걸이, 삶을 결산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축소되는 가능성, 웃음기 없는 회색빛 거리, 지하실 냄새 가득 품은 엘리베이터, 각자 탐색하고 헤매다가 또다시 감도는 이별의 징조, 새로운 시도의 도약대라며 감싸던 실패가 또 다른 시도에 실패하는 것, 지친 몸뚱이를 짓누르는 어둑하고 싸늘한 빈방, 지워도 지워도 살아나는 시커먼 땟자국, 마침표 없이 무수히 반복되는 미끄러짐,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것, 어질어질한 망설임, 대화에 지적인 말은 한마디도 보태지 못하는 것, 존재의 피로와 일상을 우울로 물들이는 자기 연민….




수없이 쏟아지는 싫음의 목록들


그러나

싫어함은 자신을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가꾸는 일이고

싫어함이 만들어내는 슬픔은 삶을 통찰할 수 있는 힘이며

그래서 싫어함의 목록은 얼마든지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달랩니다.




그럼에도

싫음은 운명이라는 모양새로 쌓이고 겹치면서 삶이 연쇄적으로 뻗어 나가는 것을 방해하고 쪼그라트리고 뒤섞고 헝클고 무너뜨리고 뒤죽박죽 뒤집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고갈과 마모 그리고 빈곤도 싫음의 산물이고.


그러면서

무슨 권리로 싫다며 손사래 치는 건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은 아닌지.


삶,

참 험난한 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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