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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매일 익숙해진 것들에 대해 저항하라 명한다.

자유를 제대로 즐기려면 명령에 따라야 한다.

by 지금

‘~을 하고 싶니?’ 그러면 ‘~하지 마라.’

자비라고는 흔적도 없는 차갑기 그지없는 명령이다.

그럼에도 한다면 ‘~을 할 수 없다’면서 던지는 섬뜩한 경고다.


‘~을 하고 싶니?’ 그러면 ‘~해라.’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참 거추장스러운 명령이다.

그럼에도 하지 않는다면 ‘~을 할 수 없다’면서 보내는 강력한 요구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려거든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단호한 명령이다.






자유를 제대로 즐기려면 명령에 따라야 한다.


시간이 쌓일수록

‘해라’의 품목이 늘어난다.


그리고 명을 어겼을 경우에 발생할 고통에 대한 소름 돋는 협박과 경고가 뒤 따른다.

익숙해진 것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저항하라는 거다.


옷장은 구제 의류점을 닮았다.

5년은 신상이고 10년 20년이 지난 옷들도 건재하다. 이 옷은 이래서 저 옷은 저래서 옷마다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무수하고 이 옷은 이래서 저 옷은 저래서 새 옷을 구입하지 않는 이유 또한 눈물겹다.


세월은 명한다.

깔끔하고 품위 있게 입으라고. 옷을 관리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것이고 옷에 신경 쓰는 일은 자신의 삶에 신경 쓰는 일이라고. 옷을 고르고 자신에게 어울리게 연출하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고.


달콤함에 익숙하다.

온 과일을 설탕 시럽으로 도배하여 만드는 탕후루처럼 온몸을 설탕으로 도배한다. 눈을 뜨자마자 설탕이 듬뿍 들어간 빵을 시작으로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 종일 설탕 순례다.


세월은 명한다.

달콤함의 유혹에서 빠져나오라고. 달콤함의 유혹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 자신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음을 깨달으라고. 그 유혹은 자신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꿈과 훨씬 더 멀어지게도 할 거라고.


집이 익숙하다.

집을 나서는 일은 좀체 없다. 낯선 풍경, 낯선 소리, 낯선 맛…, 낯섦이 거북하다. 집이 편한 건 의식할 눈이 없어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정한 방식대로 내가 정한 일을 누구의 간섭 없이 마음껏 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발길도 멎고 눈길도 닿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좋다.


세월은 명한다.

대문을 열어젖히라고. 그리고 그 어딘가를 향해 나가라고. 나의 공간에 누군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누군가의 공간에 쾌히 발을 들여놓으라고. 그럴 때 그와 나는 기쁨으로 연결된다고.


삶을 좌우하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삶을 내거는 의지다.

정리해야 할 삶의 태도를 내놓을 때 삶은 새로움을 입는다.




‘해라’의 품목이 늘어남과 동시에 ‘하지 마라’의 목록 역시 폭증한다.


죽음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지려면 하지 말란다.

이것도 저것도 금지다.


청바지가 익숙하다.

청바지를 즐긴다. 세월에 구겨진 몸뚱이를 가리는데 이만한 것도 없을 테다. ‘나이에 걸맞게’를 외치는 주변인의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언제나 청바지에 몸을 구겨 넣는다. 그 색깔이 그 감촉이 그리고 몸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 뻣뻣함이 좋다.


세월은 말한다.

자신의 현 상태에 다른 이름을 붙이라고. 젊음에 잠재력, 활기, 열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늙음은 성숙한 능력, 지혜, 원숙쯤이 어울리리라. 그러니 청바지에 빨간 셔츠로 젊은이 흉내 내지 말고 시절에 맞추라고.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라고.


불평불만이 일상이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짜증이다. 매사 불평이고 푸념이고 투정이다. 투덜거림이 몸에 익었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못마땅하다. 또 저 사람은 저래서 마뜩잖고 이 사람은 이래서 밥맛이다.


세월은 말한다.

불평불만이 고통을 줄여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고. 그러니 어느 경우이든 불평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그러나 말은 쉽다. 어쨌거나 세월은 말한다. 마음을 가라앉혀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라 이 상황에서 나에게 달린 것이 무엇인지. 그 불평거리가 내 통제 밖에 있는 것은 아닌지.


한숨이 일상이다.

마음이 허하다. 그 시절을 생각해도 한숨이고 이 시절도 마음이 무겁다. 그때 왜 그랬는지 그리고 오늘은 왜 이러고 있는지. 오늘은 내일의 한숨거리고 내일은 또 다음날의 한숨일 테다. 괜찮았던 시절 괜찮았던 일은 어찌 그리도 쉽게 사라지는지. 오늘도 한숨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숨으로 마무리 짓겠지.


세월은 말한다.

말하고, 듣고, 보고, 걷고, 숨 쉬고, 삼키는 능력을 잃었냐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라고. 그러면 고난의 영향력은 사라지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다고




기쁨을 포기하는 것은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이다.

하나의 기쁨을 포기하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을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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