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른다
십수 년을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십수 년을 함께 해도 넘지 못할 담이 있다.
십수 년 나는 나를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누군가 싶다.
늘 낯설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 체 산다.
무지는 폭력과 야만을 낳는다.
마음을 무너뜨리고 기운을 갉아먹는다.
나에 대한 모름을 방치하면
삶에 열정을 쏟을 마음은 점점 죽어간다.
그런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니요, 일종의 도피처이며 사랑과 욕망을 가두는 수용소일 뿐이다.
나는 모른다
재미있는 대화를 할 줄 모른다.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는 좋은 질문을 할 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인정사정없는 자기 심문을 할 줄 모른다.
개선해야 할 목록 작성엔 열심이면서도 정작 자신을 포함시킬 줄은 모른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처럼 변덕이 이끄는 대로 이길 저 길을 따라갈 자유를 누릴 줄 모른다.
인생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른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칠 줄 모른다.
사랑이 아니라 증오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은 병든 사람임을 모른다.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할 줄 모른다.
“너는 사랑스러워”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줄 모른다.
비교로 우열을 결정하는 버릇이 나쁜 것인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거짓인 줄 모른다.
‘… 라면, …이었다면’하는 생각에서 비극이 시작되는 것인 줄 모른다.
실수를 하면 혀를 차고 후회만 할 뿐 그 속에서 귀중한 것을 찾아낼 줄 모른다.
불쾌감, 모멸감, 좌절감, 원통함도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받을 수 있는 선물임을 모른다.
걷고, 만나고, 이야기하는 일상의 모든 활동이 기적임을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냥 흘러가는 삶에도 느긋한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은 배터리가 방전돼서가 아니라 그저 나와 말하고 싶지
않아서임을 모른다.
인생은 오래 버티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관계, 나눔, 충분한 사랑, 좋은 감정, 참여,
포용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모른다.
느림과 쉼을 죄악으로 여기며 이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으나 정작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모른다.
웅크리고만 있는 삶으로는 삶을 자극하는 변화의 여파를 알아차릴 수 없음을 모른다.
나는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모른다.
찾아갈 이도 찾아오는 이도 없다면 내가 있는 그곳이 감옥이 되는 건 시간문제임을 모른다.
자기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현재를 지배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임을 모른다.
달력에서 빨간 날이 아니라 까만 날이 더 행복하다는 걸 모른다.
밤낮 타인과의 생활에 빠져 자기 자신과의 생활을 소홀히 하면 자기 영혼에 어떤 공허를 남긴다는 것을 모른다.
감탄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과는 우정을 나눌 수 없음을 모른다.
스마트폰은 별별 삶을 제공하면서도 그러한 삶을 실제로 경험할 필요는 숨긴다는 사실을 모른다.
고달픔이 없으면 원대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음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