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는 선택은
삶의 방향을 잃게 한다

버림받지 않으려면 너를 버려라

by 지금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대학에 좋고 나쁜 대학이 있고, 좋고 나쁜 직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에는 좋고, 나쁨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성공과 안락함을 전제로 언제나 '좋은 대학’을 강요합니다.


좋은 대학의 조건은 ‘좋은 능력’입니다.


‘좋은 능력’은 대학이 인정하는 능력입니다.

아이는 대학의 인정을 받으려 천부적 능력을 감춥니다.


그리고 있지도 않고 원치도 않는 능력을 갖추려 삶을 바칩니다.

대학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무능인’이 되어 가차 없이 버려지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지 않으려면 너를 버려라


현관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키를 넘보는 높은 신발장이 놓여 있다. 애들은 매일 두어 차례 이곳을 들른다. 마치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는 환승객을 닮았다. 실내화로 혹은 실외화로 갈아 신고 각자의 길을 간다.


애들을 싣고 온 신발들을 살핀다. 피곤에 찌든 모습들이다. 신발에는 애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닳고 휘고 꺾인 신발은 애들의 삶을 닮았다.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신발들이 똑같이 주어진 공간에 맞춰 한 가지 모양으로 처박혀 있다. 신발은 구겨지고, 삐져나오고, 떨어진다. 신발장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신발은 여지없이 토해낸다. 신발장은 모든 신발을 허용하지 않는다. 신발은 선택해야 한다. 신발장에 맞추어 크기와 높이를 조절하든지 땅바닥을 기든지.

신발들이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간

모양도, 색깔도, 기능도, 생각도, 능력도 제각각인 아이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같은 생각을 하고, 하나의 길을 바라보며 하나의 색으로 물들어간다.


책상에 엎드린 아이들이 뒤척이는 것은, 세상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세상의 요구에 맞춰 생각을 바꾸고, 길을 바꾸고, 능력을 바꾸고, 삶을 깎고 색을 입혀야 하는 삶의 고통 때문이다.


애들의 발이 떠난 신발. 쉴 법도 한데 쉬지 못하는 것은 신발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신발장에 맞게 몸을 낮추고, 폭을 줄여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버림받지 않으려면 너를 버려라.”거칠고 악한 요구는 교실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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