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계절 맞이
수십 일 동안
엄청나게 많은 가게를 돌면서
수십 번 보고 또 보고 수없이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한없이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자 마음도 바뀌었습니다.
어디든 드러내고 싶었던 옷은 감추고 싶은 옷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설레게 했던 색깔은 더 이상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모양은 또 왜 이리 촌스러운지요.
그렇게 물고 빨던 옷들은 이제 천덕구니가 되었습니다.
아내의 계절 맞이
“아이휴, 지난해엔 뭘 입고 살았지?”
빛의 열기가 여려지고 바람의 결이 산뜻해지자 아내는
옷장 문을 부여잡고 긴 한숨을 토했습니다.
한 계절이 물러나고 새로운 계절이 들어설 즘이면 어김없이 아내는 옷장을 뒤집습니다. 닭의 발길질로 이리저리 튀는 모래알처럼 옷이 사방으로 튑니다.
그 모습을 볼라치면
“그거 편안해 보이고 좋은데”
“디자인도 이쁘고”
“이거 세련됐는데, 컬러감도 돋보이고”
라는 말이 목구멍을 타고 오릅니다.
그렇지만 감히 입 밖으로는 내밀지도 못한 채 꾸울꺽 되삼 키곤 합니다.
돌아올 타박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옷장 앞에만 서면 아내는 사나워집니다.
눈빛도, 어투도, 소리도 그리고 손짓 발짓도.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때마다 입을 옷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에게 할 말이냐고”
“염치라도 있어야지,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냐”
“이게 언제 적 옷인 줄 아냐고”
“어디 옷 한번 제대로 사준 적 있느냐고”
라고 쏘아붙일 게 뻔합니다.
옷장을 뒤지는 아내의 눈은 시퍼렇게 날이 섭니다.
이때는 아내의 눈을 피하는 게 답입니다.
아내는 한참을 이 옷 저 옷을 걸치면서 몸을 뒤집고 꼬고 또 꼽니다.
아내의 몸꼬기는 그렇게 한동안 계속됩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한숨 소리는 점점 더 거세집니다.
옷에 대한 사랑은 어찌 그리도 유효기간이 짧을까요?
오늘 저녁 따뜻한 밥상은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내는 질풍노도 사춘기 소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