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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Oct 28. 2023

부부의 사랑이
자라는 원리

닭과의 만남

여보!

아내의 부름에 심장이 살짝 움찔댑니다.

심장의 눈치는 이미 아마의 경지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부름은 요구의 원리로 작동됩니다.

요구 없는 부름은 없습니다.      


아내의 부름에 심장이 멈칫하는 이유입니다.

아내의 부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심장은 이미 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동굴을 장만했습니다.

동굴로 파고드는 것이 그나마 주어진 명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월을 몇 고비 넘고 나니 아내의 부름이 그립습니다.

아내의 부름이 뜸해졌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니


아내의 부름은 남편에 대한 믿음이었고, 아내의 요구는 남편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부름 앞에서 멈칫댔던 심장은 믿음에 대한 감사 그리고 사랑에 대한 설렘이었습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아내의 요구는 사랑이었음을, 그리고

아내의 요구에 대한 응답은 사랑에 또 다른 사랑을 얹는 일임을, 그리고

이것이 부부의 사랑이 자라는 원리임을 말입니다.






닭과의 만남     


집 옆에 직각 삼각형 모양의 좁다란 터가 있습니다.

작은 나무 몇 그루가 전부인 휑한 텁니다.

어느 날 아내는 그 터의 용도를 물었습니다.     


놀고 있는 땅이 보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아니, 땅과 함께 빈둥거리는 내가 보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답이 지체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는 닭장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그리고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옆집 닭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참 예쁘더라고” 

“먹이를 찾아 뛰어다니는 닭들을 보면 기분이 업되더라고”

“암탉을 부르고 위험을 알리는 수탉의 모습에서는 경외감마저 들더라고”

“싱싱한 계란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덤이고”

“…”      


거기에다 기르는데 손도 별로 가지 않는다더라는, 은근히 친화력도 좋다더라는 닭집 주인의 이야기도 얹으며 닭 기르기의 필요에 침을 튀깁니다.      


“당신 심심하지도 않을 걸”

“닭 노는 것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더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청은 윽박으로 변해갔습니다. 

이런저런 구실로 을러대고 없는 생각을 짜내려 짓눌렀습니다.     

 

결국 아내의 압력에 망치와 펜치를 들었습니다.

공구상, 천막가게, 고물상, 각종 자재상 등을 뒤져가며 필요한 물품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여의 시간을 들여 아내의 눈엣가시였던 빈터에 닭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쉴 사이도 없이 주변에서 가장 빨리 장이 서는 동네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장이 선다는 그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시골장임에도 제법 북적였습니다. 

길게 늘어선 노점상 사이를 비집으며 닭집을 찾았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꾸벅거리며 졸고 있던 닭 장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입가에 흐르던 침을 황급히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닭을 이야기하자 함께 졸고 있던 닭들을 서둘러 깨웠습니다.    

  

간신히 목을 세운 닭들은 소리도 맘껏 지를 수 없는 좁아터진 닭장 속에서 뭔 일이냐는 듯 들릴 듯 말 듯 뿌드득 뿌드득 웅얼거리며 어디로 옮길 수도 없는 발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습니다. 닭 장수는 언제 졸았냐는 듯 벌떡 일어서서 좋은 품종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면서 개중 한 마리를 꺼냈습니다.   

  

닭장수는 녀석의 날개쭉지를 툭툭 건드리며 녀석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습니다. 아내는 결국 닭장수가 권하는 녀석으로 세 마리를 샀습니다.     


닭장수는 퉁실한 몸에 어울리지 않은 속도로 옆에 누워있던 종이상자를 튼실하게 접은 후 명을 다한 듯한 녹슨 칼로 상자 옆에 구멍을 냈습니다. 그리곤 아내가 점찍은 닭 세 마리를 잽싼 솜씨로 넣고 뚜껑을 닫았습니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내내 아내는 닭을 담은 상자를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고행길임을, 힘겨운 고통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닭이 온 이후 하루의 일과는 닭 모이 주는 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잘 먹고 잘 노는지, 구석에 처박혀 졸고 있는 녀석은 없는지, 혹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않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둘러봐야 합니다. 신경을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내의 강압에 굴복해 병아리 몇 마리로 시작한 닭 기르기가 이젠 족쇄가 되었습니다.      


거센 빗소리에 잠을 설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작은 바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건 기본입니다. 닭장 지붕은 온전한지, 닭장 주변에 둘러놓은 비닐은 찢기지 않았는지, 닭을 가둔 망은 괜찮은지, 비가 새는 구석은 없는지…,      


자연스레 외출 빈도도 줄었습니다.  

어쩌다 외출을 해도 편치 않습니다. 아내가 말한 재미, 아내가 말한 즐거움, 아내가 말한 기분 업은 언제쯤 일지.     


닭과 만난 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재미나 즐거움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재미를 느껴야 할 나 자신이 사라지니 그럴 수밖에요.     


닭을 살피느라 나를 살필 시간이 없다면 엄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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