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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Nov 02. 2023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은
아내의 수고

기억 속 아내의 아침

과거는 지나가지 않는다.

몸 구석구석에 똬리를 튼다.

어제는 지나가지 않는다.

몸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긴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일의 무게가 계속해서 삶을 옭아맨다.

어제는 묻히지 않는다.

언제든 깨어나 오늘을 간섭한다.     


어제의 아픔과 고단함이

힘겨움과 괴로움이 어설픔과 불완전함이 그리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다.     





기억 속 아내의 아침     


아내의 아침은 힘겹습니다.     


몸은 한 시간만 더를 외치지만 아내는 몸의 요구를 뒤로 미룬 채 몸뚱이를 세면실로 끌고 갑니다. 그리곤 몸 구석구석 묻어 있는 잠의 유혹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털어냅니다. 

   

세면실을 나서는 아내의 몸엔 잠시 전까지 덕지덕지 묻어 있던 밤의 흔적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곤 가늘고 짧은 미소를 보냅니다. 잘 잤다는 그리고 잘 잤냐는 아내 만의 인사법입니다.    


아내는 매일 아침 자신의 일이 아닌 남편의 일로 침대에 붙은 몸뚱이를 떼어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아닌 남편의 생각으로 냉장고를 열고 자신의 뜻이 아닌 남편의 뜻으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입니다. 새벽에 일어나고 도마질을 하고 된장을 풀고 김치를 써는 것은 오직 남편으로 인해서입니다.    

 

남편의 출근복을 준비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아내의 몫입니다. 남편은 단 하루도 아침상을 거른 적도, 꾸깃한 옷을 입고 출근한 적도 없습니다. 언제나 아내의 온기가 담긴 옷을 입었고, 든든한 배를 쓸며 집을 나섰습니다.     


아내는 매일 태양도 일어나지 않은 어둑한 시간에 일어나야 했고, 일어나자마자 중노동에 진땀을 흘렸습니다. 띄엄띄엄 어쩌다 있는 일시적인 일이 아닙니다. 남편의 출근이 중지된 날까지 하루도 거름 없이 아내의 힘겨운 아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려 30년이 넘는 긴 세월입니다.    

 

아내의 아침은 온전히 남편을 위한 아침이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형용이 불가한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내가 여는 남편의 아침은 언제나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맑고 밝았습니다.    

  

이젠 출근이 멈췄습니다.

힘겹고 고됐을 나날 그러나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었습니다. 오히려 새벽 출근을 염려했고 새벽 발길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내는 수십 년이 꿈처럼 지났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쫓기고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넘어지는, 기쁨보다 슬픔이 즐거움보다 아픔이 많았던 꿈…, 사실로 여기기엔 너무 벅찼던 시간 정말 꿈을 꾼 것 같다는…, 얼마나 고단했을지 가늠조차 어렵습니다.     


이제

알람에 기대 한사코 부여잡는 잠과의 다툼은 없습니다.

째깍거리는 시곗바늘에 쫓겨 씻고 다듬고 썰고 묻혀야 하는 조마로움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색과 모양을 맞춰 옷을 선택하여 털고 다리고 입고 나서는 장면을 지켜야 하는 짐스러움도 사라졌습니다.

꿈이라고, 현실에서 마주하기 싫은 꿈이라고 더 이상 꿈속에 머물기를 갈구할 필요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아픔 없는 아침일 줄 알았습니다.

편안한 시간에 일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커튼을 열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을 줄 알았습니다. 아침은 온전히 아내만을 위한 시간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한 아침을 즐기기엔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내의 아침은 여전히 힘겹다는 것을

힘에 부치고

세월이 내려앉은 팔다리가 무겁다는 것을 

남편을 위했던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에 개입해 오늘을 어지럽힌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아내를 위한 아침

이제 남편의 몫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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