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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Nov 14. 2023

사라진 부모님의 삶

부모님의 땅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틈만 나면 이거 해라 저거 하라시며 입에서 놓지 못하시던 잔소리가 사라졌다.

빨갛고 노란 농작물을 보시며 흐뭇해하시던 모습도 없다.

며칠씩 퍼붓는 비에 밤잠을 설치시고 곤두박질치는 농산물값에 내뿜으시던 담배 연기도 추억이 되었다.   

  

아내는 부모님이 그리울 때면 부모님의 발자취를 찾았다.

비록 부모님의 소리는 없지만 발자취는 여전했다.

평생 걸으셨던 밭둑이며 논둑 허리 휘도록 일구신 산허리도 변함없다.

부모님이 스치셨던 풀들도 고단함을 걸치셨던 오뚝한 바위도 그대로다.

자식을 위해 심으신 밤나무는 여전히 튼실했고 때마다 넉넉함을 제공했다.     


아내는 부모님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부모님이 앉으셨던 바위에 몸을 얹곤 했다.

부모님의 땀방울이 배어있는 땅에 눈물을 섞곤 했다.

부모님의 땀내가 좋았고 부모님의 발자취가 애틋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부모님을 만날 수 없다.        



  




부모님의 땅     


“아이고, 그놈이 결국 일을 냈네!”     


아내는 처형과의 통화를 끝내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성을 냈습니다.

동생이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을 판다고 내놓았다는 겁니다.     


부모님의 삶은 초라했습니다. 지위도, 재산도, 이름도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옷 한 벌로 사계절을 사셨고 한 켤레의 신발로 산과 들을 그리고 시장을 누비셨습니다. 절 아닌 절에서 스님 아닌 스님으로 사셨던 겁니다.      

어릴 때에는‘너의 부모?’를 묻는 타인의 눈이 두려웠습니다. 내놓기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초라함이 부끄러웠습니다. 


어제의 밥상은 그대로 오늘의 밥상이 되었고 올해의 삶은 그대로 내년으로 이어졌습니다. 부모님은 자신의 편안함은 자식의 불편으로 이어진다는 신념으로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셨습니다. 자식의 편안함과 풍요를 위해 밥값이 생기면 논을 넓히셨고 옷값으로는 밭을 넓히셨습니다. 부모님의 삶은 온전히 자식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의 삶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없었습니다. 외국 여행도 낯설지 않은 세상에 국내 여행조차 손사래를 치며 논두렁, 밭이랑을 뜨지 않으셨습니다. 논밭이 생명이었고 삶의 터였습니다. 자신이 흘린 땀만큼 자식은 웃으며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1년 365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칠고 험한 땅을 파고 또 팠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은 자식의 풍요를 위해 당신의 풍요를 접으셨습니다.     

자식이 살아갈 터전을 닦는 일은 앞으로 몇 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논을 살피셨고 밭을 매만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고단하고 힘겨웠던 삶이 멈췄습니다. 부모님의 손과 발에는 자식의 풍요를 위해 평생 일구었던 논밭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삶은 웃음 한번 웃을 수 없는 일그러진 시간이었습니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펼 수 없는 구겨진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서로의 손 한번 잡아볼 여유도 없이 그들의 손엔 언제나 호미가 들려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삶이었지만 그 속에는 자식만 올망졸망 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은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의 삶은 자식을 위한 삶이었고 그 삶의 결실은 자식의 손에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식의 풍요와 편안함을 위해 부모님이 일구신 논이며 밭이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평생 일구신 논밭이 자식의 품을 떠나 야금야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부모님의 삶이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땅을 품에 안은 자식은 부모님의 살과 피로 일군, 부모님의 삶이 깃든 땅을 마치 해치우듯 빠르게 처분해 나갔습니다. 부모님이 수십 년 허리 한 번 펴지도 못한 채 오직 자식만을 바라보며 일군 논밭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부모님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입니다.    

 

아내의 한숨이 깊습니다. 아내는 아들 사랑이 유심했던 부모님으로 밭 한 뙈기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손에는 흙 한 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삶을 묻은 땅이기에, 곳곳에 부모님의 삶이 새겨진 땅이기에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소식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땅이 낯선 누군가의 손으로 사라졌다는 소식은 아내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부모님의 삶을 묻은 그 땅, 오직 자식만을 생각하며 피땀으로 일군 그 땅을 지금은 낯선 이의 손이 주무르고 발이 자국을 냅니다.     


아내는 부모님의 사랑을 저버린 것이, 부모님의 삶을 날려 버린 것이 비통합니다.

아내는 먼 훗날 부모님의 얼굴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걱정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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