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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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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Nov 11. 2023

아내에겐
모든 게 잔소리거리다

닭도 때론 부럽다

‘이거 하고’

‘그게 되면’     


아내는 언제나 ‘이것’과 ‘그것’ 다음이었습니다.

아내를 앞세운 기억이 없습니다.

아내의 생각, 아내의 취향, 아내의 기호는 언제나 뒷전이었습니다.    

 

매사 나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내가 중심이고 내가 기준이었습니다.

나를 기준으로 시간이 정해지고 공간이 조성되고 내용이 결정되었습니다.   

  

암탉을 앞세우는 수탉을 닮으라는 아내의 말에

“무슨 말이야!”

“어떻게 ‘저것’과 비교를 해!”

소리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닭도 때론 부럽다     


마음에도 없던 닭과의 연이 닿은 뒤 하루의 일정 속에 닭의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연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볼수록 한숨이 터집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닭을 들이겠다는 아내의 뜻에 침묵으로 일관했으니 아내가 동의로 이해했다 한들 그게 아니었노라고 내세울 만한 변변한 구실이 없으니 말입니다. 누구를 탓할 입장도 못되니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더 괴롭습니다.     


어쩌다 보면 웃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 보면 “와, 좋다, 예쁘다” 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 보면 돌아서고 싶지 않아 또 보고 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닭장을 찾는 일은 참 귀찮은 일입니다. 옷도 닭장용이 있고 신발도 닭장에 걸맞게 신어야 합니다. 거추장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남들은 즐거움을 말하지만 내겐 고통에 더 가깝습니다. 그것이 일이 되는 순간 그것은 졸지에 마음에 깊은 주름을 새깁니다.          




그럼에도 매일 모이를 주고 닭의 동태를 살핍니다. 시중에서 구입한 사료와 동네 방앗간에서 구한 쌀겨와 싸라기 그리고 이곳저곳을 돌며 구한 다듬고 버려진 푸성귀 등을 적절히 섞어 먹기 좋게 넣어줍니다.      

 

먹이를 본 녀석들은 거칠게 변합니다. 쫓고 쫓기고, 뺏고 뺏기고, 쪼고 쪼이고…, 닭장은 졸지에 전장이 됩니다. 작은 이파리 하나를 두고도 난립니다. 다른 존재에 대해 눈을 멀게 하는 이기적 욕망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숙명인 듯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그리 동요하지 않는 녀석이 있습니다. 게걸스러운 무리 중에도 그들의 탐욕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않는 녀석이 있습니다. 더 먹겠다고, 자기만 먹겠다고 온몸을 던지는 추잡한 욕심은커녕 더 먹으라고 너 먹으라고 양보하는 듯 먹이 앞에서 태연한 녀석이 있습니다. 바로 수컷입니다.   

  

수컷은 암컷이나 작은 닭들이 먹는 틈에 끼어 먹이 싸움을 벌이지 않습니다. 그 녀석이라고 배가 고프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꺼이 양보합니다. 때로는 크고 굵은 먹이는 잘게 쪼개 놓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장 힘센 녀석이, 가장 큰 녀석이 얼마든지 다른 녀석들 제치고 독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양보합니다. 화려하고 멋진 볏이 그냥 달린 것이 아닙니다. 수탉은 볏 값을 톡톡히 합니다.     


언제 왔는지 아내가 나를 흘끗 바라봅니다.   

  

“당신은 뭐야, 닭만도 못하잖아”     


언제나 자기를 먼저 생각한다면서 아내가 쏘아붙입니다.

졸지에 닭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휴, 어쩜 닭만도 못할까”     

아내의 구시렁은 닭장을 벗어나도 멈추지 않습니다. 


서당개도 3년이면 깨닫는 바가 있다는데 당신은 뭐냐는 핀잔처럼 들립니다.     

남편으로서의 삶의 이치 멀리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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