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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Nov 06. 2023

아내의 손끝엔
언제나 정이 달려있다

‘너’를 향한 아내의 손길

나눔은 어렵습니다.     


나눔은 늘‘나만’과‘너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합니다.


이때‘나만’을 위한 욕망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반드시 가면 뒤에 이기적 욕망을 숨긴 채 은밀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어 기제를 섬세하게 작동시키고 타인의 동의를 위해 구차한 손길을 펼칩니다.     


나눔이 언제나 그렇게 중요했던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나만’을 위한 삶에 집중했습니다. 때론 사랑을 얻기 위해 추잡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피하기 위해 ‘나만’을 위한 인색함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소리만 듣고, 자신의 말만 늘어놓고, 자신이 마음만 챙기고…, 어른의 나쁜 버릇 중 하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가슴에 다가옵니다.     


그러나 아내는 다릅니다.     




를 향한 아내의 손길     


“이게 뭐야?”

“응, 민서네 주려고”     


“뭐 해?”

“응, 미영이에게 보낼 거 포장하느라고”   

  

“웬 책이야!”

“응, 봉사활동하는 도서관에 가져다 놓으려고”     


아내는 늘 뭔가를 싸고 포장하고 손수레에 싣습니다.

뭐라도 생기면 연신 퍼 나릅니다.    

 

서너 마리가 낳는 적은 계란도 잠시도 집에 머물지 못합니다.

거푸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이 집 저 집 이 사람 저 사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마디라도 나눈 사이라면 으레 나눔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좋아할까?’

‘그들이 필요로 할까?’ 

‘괜한 부담만 안기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내에게 내 염려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내는 뭐라도 생기면 그것의 임자를 용케도 잘 찾아냅니다. 누구에게 어울리고, 누구에게 필요하고, 누구에게 제격인지 어쩜 그렇게도 짝을 잘 맺는지 기가 찹니다. 그리고 임자가 정해지면 바로 싸고 또 쌉니다. 지체함이 없습니다.    

 

내가 덜 쓰더라고, 내가 덜 먹더라도, 내가 덜 편하더라도 …,

좀 귀찮더라도, 불편하더라도, 힘겹더라도 …, 아내는 싸고, 넣고, 꾸립니다.     


아내는 나눔에 인색함이 없습니다.

나눔에 주저함도 없습니다.


물건뿐이 아닙니다.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노동력까지도 아낌없이 내놓습니다.     


나눔에 주저하고 나눔을 따지고, 선물이 아니라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라는 합리를 가장한 핑계로 나눔에 인색한 나와는 다릅니다.      


아내의 삶은 품격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욕심의 순서와 위계를 정할 줄 안다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어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이치가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다스리라고 말한 데카르트의 가르침과도 닮았습니다.     


다스려졌나 싶으면 어느새 다시 되돌아온 자신의 욕망을 앞세운 삶을 살아가는 나와는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자네는 아내 덕에 사는 줄 알아!” 웃으며 건네는 이웃 어른의 말, 결코 헛말이 아닙니다.     


‘부끄러움 모르는 삶 그럼에도 편안하니?’


스스로 묻고 또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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