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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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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Nov 25. 2023

떠나는 나를 위해
남아 있는 내가 해야 할 일

움직임,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오늘의 나도 사라진다.

오늘의 나는  다시 만날 수 없다.     


눈맞춤 할 여유도 없다.

완전히 잊혀 땅 속에 묻힌다.     


다시 만나지 못할 자신을 사랑해라.

떠나는 나를 사랑해라.     


사랑은 이별하는 자신에 대한 마지막 감사다.

그리고 떠난 나의 자리를 찾은 새로운 자신에 대한 환대다   

  

그래서 사랑은 내게 주어진 위대한 소명이다.     





움직임,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여보, 여기 좀 문질러 봐!”     


잔뜩 웅크리고 TV를 보던 아내는 내가 눈에 띄자 대뜸 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리곤 어딘가를 턱으로 가리켰습니다.      


어리둥절 머뭇대자 뭐 하냐는 듯 두 눈을 치켜올립니다.

그래도 움직임이 없자 나를 향해 곧추세운 눈을 다시 턱이 가리킨 곳으로 옮깁니다.     


아내의 눈이 가리킨 곳에는 불가사리를 닮은 어른 주먹만 한 마사지 도구가 뒤집힌 채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습니다.     


미끈미끈 반질반질 날렵하게 생긴 마사지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아내는 세웠던 눈을 내리고 다시 몸을 바닥에 쫙 펼쳤습니다.


나는 아내의 말대로 어깨부터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잘하고 있다는 듯 미동조차 없습니다.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아내의 몸은 점점 더 편안한 자세로 변했습니다.      


아내가 편안한 만큼 내 몸은 불편했습니다. 팔이 아팠고 손목이 뻐근했습니다. 언제 ‘그만’을 외칠까 ‘됐어!’가 간절해질 즘 아내는 허리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옆구리 또 다음엔 팔 다시 다리까지 주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이젠 허리까지 뒤틀렸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내 몸뚱이 상태는 아랑곳없이 발바닥을 파닥이고 발가락까지 꼼지락대면서 시원함을 즐겼습니다.     


아내는 건강을 쉽게 얻으려 합니다. 남들은 매일 산책로를 걷고 뛰고 계단과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건강을 챙기건만 아내는 TV앞에 웅크린 채 건강이 유지되길 기대합니다. 참 꿈이 야무져도 너무 야무집니다. “당신도 남들처럼….”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작은 눈을 두 세배 키우면서 자신이 알아서 한다며 되레 큰 소립니다.     


눈에만 띄면 뭔가 시키는 통에 아내 앞에 나서기가 두렵습니다.

아내는 나이가 들수록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기를 즐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임승차도 잦아집니다.     


무엇인가 얻으려면 그만큼 땀을 흘려야지 세상에 공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어디 있겠냐고.

다른 사람이 팔을 뻗고 다리를 굽힌다고 자신의 팔다리 근육이 불끈거리냐고.

다른 사람이 흔들어 댄 뱃살로 자신의 뱃살이 울퉁거리겠냐고.

다른 사람이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운동 다닌다고 자신의 팔자주름의 팔자가 피겠냐고

다른 사람이 들이쉬고 내쉰 숨으로 자신의  늙음에 봄이 다시 돌아오겠냐고. 

  

움직임은

다시 만나지 못할 오늘의 자신을 사랑하는 일임을

지속되지 않는 자신에 대한 아름다운 본분임을

시들어 가는 아름다움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임을

폐허로 변해가는 몸뚱이를 보며 솟구치는 슬픔에 대한 위로임을


아내는 애써 외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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